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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24. 2022

우리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62일째 

8월 24일(수) 선선한 늦여름 


아침 공기가 남다르다. 여름도 끝물이다. 선선한 초가을 바람 때문인지 첫째가 아침부터 쿨럭쿨럭 기침을 한다.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아이 등원 준비를 시킨 뒤 첫째 등원을 시켰다. 간단히 아침을 먹고 씻기면 알아서 옷을 입는다. 마무리는 늘 마스크. 이젠 안경을 닦아 쓰는 것까지 하나 더 준비할 게 늘었다.


등원 길은 경쾌했다. 아슬아슬하게 등원 시간을 맞추는 습관을 고쳐주고 싶지만 나도 피곤해서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이젠 곧 가을이니, 선선한 가을 아침을 최대한 즐기도록 좀 더 여유롭게 등원을 시켜야겠다. 


등원 후의 아침은 평화롭다. 남편은 아침에 둘째를 먹인 뒤 자고 있고, 둘째도 그런 아빠 옆에서 쿨쿨 잔다. 둘째가 꼬물꼬물 일어나려 하길래 남편을 첫째 방으로 보내고, 둘째와의 아침 놀이를 시작했다. 놀이라고 해봤자 별 건 없다. 이름 불러주기, 눈 맞춰 주기, 작은 몸통에 입맞춤하기, 다리 운동, 쭉쭉이, 집 구경 등이다. 둘째는 아침에 기분이 늘 좋고 잘 웃어준다. 


오전에 단유 마사지가 예약돼 있어 슬슬 나갈 준비를 했다. 마지막 마사지다. 총 5회 차의 단유 마사지는 출산 임신 기간 중 가장 값진 소비라 생각되는 것이다. 다시 조리원 입소 시기로 돌아간다면 전신 마사지를 반으로 줄이고 그 돈으로 오케타니 마사지를 받았을 거다. 다시 첫째 출산 때로 돌아가면 출산 후 바로 오케타니 마사지를 받고, 모유수유를 시작했을 거다. 마사지를 받는 동안 기분 좋은 나른함에 취할 수 있어 더 좋다. 마사지 선생님은 6개월 뒤 유방초음파를 꼭 찍어볼 것을 권유했다. 12월의 나는 제주에 있을 테니 내년 건강검진으로 초음파를 찍어봐야겠다. 


지난번 이후로 대중교통으로 마사지실과 집을 오가는 법을 완전 마스터하게 됐다. 임신과 출산, 회사일과 육아를 거듭하며 시간은 돈보다 귀한 게 됐다. 산부인과도 마사지샵도 시간 절약을 위해 카카오 택시를 부르는 습관이 있었다. 남편과 함께 육아휴직을 한 뒤 나에게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가벼운 산책과 비타민D 충전이므로 요즘 들어 대중교통을 많이 이용하고 되도록 걸어 다니려고 애쓴다. 


버스를 갈아타고 동네 도서관에서 첫째 책을 대출한 뒤 집에 돌아와 점심을 요리했다. 점심 메뉴는 오일 파스타다. 집에 있는 가지, 호박, 꽈리고추 등을 넣고 오일 파스타 소스를 이용해 요리했다. 건강하면서 감칠맛도는 매콤하고 깔끔한 파스타가 금방 완성됐다. 페어링으로 화이트 와인이 절실했지만 그런 게 집에 있을 리 없으니 포카리스웨트로 만족했다. 내가 직접 요리한 야채가 듬뿍 들어간 파스타를 남편도 잘 먹었다. 남편은 입이 짧은 편인데 잘 먹으니 기분 좋았다. 건강한 밥상은 기분을 좋게 하는구나. 채소를 꺼내 도마에 놓고 삭둑삭둑 자르며 요리를 하면 절로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직접 요리해서 점심을 먹으니 괜히 의욕이 생기고 오후 스트레칭도 바로 하게 된다. 30분가량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둘째와 놀아주다가 저녁거리까지 준비하기로 한다. 오늘은 남편이 하원을 나가기로 했지만 어제부터 둘째의 컨디션이 영 말이 아니다. 괜히 둘째 케어하다 요리 시간이 늦어지는 것보다 남편과 둘 다 집에 있을 때 미리미리 요리를 해두는 게 나을 것 같다. 


냉장고엔 남편이 늘 염려하는 두부 한 모가 있다. 유통기한이 8월 26일까진데 남편은 약 일주일 전부터 그 두부를 걱정했다. 절대 상할 리가 없는데도 매일 두부의 안부를 물었다. 나중엔 내가 성을 낼만큼 두부를 챙겼다. 그 두부를 오늘 드디어 요리하기로 했다. 핸드폰으로 두부요리를 검색해보니 만만하게 할 만한 요리로 '백종원식 참치 두부조림'이 뜬다. 일반 두부조림에 참치를 넣는 게 포인트다. 레시피 그대로 다 따라 했지만 멸치액젓과 들기름이 없어 멸치액젓은 생략, 들기름은 참기름으로 대체했다. 


첫째를 위한 요리도 찾아봤다. 냉장고 안에 첫째가 좋아하는 식재료는 감자, 당근, 햄, 올리브 등이 있다. 이 재료들로 할 수 있는 요리를 찾아보니 펀스토랑에서 배우 이유리 씨가 만들었던 감자채 전이 있다. 재료들을 채 썰어 튀김가루를 묻혀 전처럼 부쳐 먹는 거다. 대충 비슷하게 따라 해서 만들어보니 꽤 먹을만한 아이 반찬이 되었다. 


이 두 가지 요리를 다 준비하니 남편과 첫째가 하원 후 놀이터에서 놀다가 집에 왔다. 놀이터에서 첫째가 어제 내 속을 썩였는데 오늘은 전혀 그런 거 없이 잘 놀았다고 한다. 역시 내가 문제였나? 남편은 늘 놀이터에 뭔가를 가지고 나간다. 오늘은 줄넘기와 다이소 표 캐치볼을 갖고 나갔다. 남편은 애들 노는 동안 줄넘기도 하고, 캐치볼의 공으로 아이들이 보물 찾기도 했다나. 남편은 꽤 창의적이고 자율적으로 놀아주는 편이다. 그런 면에선 나보다 훨씬 낫다. 


첫째가 열이 있어 저녁밥은 대충 먹여주었다. 그래도 거부 없이 잘 먹어서 그것만으로 다행이다. 밥을 먹인 뒤 첫째와 오늘 저녁에 하려고 찾아 둔 과학실험(?)을 했다. 보드마카와 쿠킹호일 만으로 가능한 놀이다. 쿠킹호일에 그림을 그리고, 대야에 호일을 담그면 그림 잉크가 형태 그대로 둥둥 물 위에 뜬다. 처음 몇 번은 실패하다 마지막에 간신히 성공했다. 두 번째 실험은 키친타월에 그림을 그린 뒤 반 접어 물에 담가 젖은 휴지에 그림이 비치게 하는 놀이다. 둘 다 간단하고 매우 허접했지만 첫째의 리액션이 꽤 괜찮았다. 검색했던 그대로 따라 하면서 난 속으로 '잉 이게 뭐람. 너무 실망스럽겠는데' 싶었으나 자신을 위해 엄마가 애쓰는 마음을 알아주는지 첫째가 재밌다고 해주어 다행이었다. (별로 안 신나 보이는데, 재미있다고 침착하게 반응해줌) 

나중에 늙으면 첫째의 이 그림들이 그리울 것 같다 


열 내리라고 약도 먹이고, 책 읽고 평소보다 30분쯤 일찍 재웠다. 둘째는 원더 윅스가 시작되는지 안방에서 아빠를 애태우고 있었다. 둘 다 아프지 말고 잘 자주 길 소망하는데, 어제만 해도 첫째가 이러쿵, 둘째가 이러쿵 바라는 게 참 많았던 것 같은데 이젠 내 바람이 굉장히 소박해진 것 같다. 하루 세 끼 건강하게 잘 챙겨 먹고 애들 아프지 말고 잘 자주길 바라면서 나도 진짜 엄마가 됐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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