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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26. 2022

절대 아프면 안 되는 사람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63일째

8월 25일 목요일 흐림


힘든 하루였다. 일단 어제저녁부터 열이 올랐던 첫째는 밤새 열은 내렸지만 기침에 시달렸고 아침이 되자 다시 열이 조금씩 올랐다. 유치원에  간다고 알리고 하루를 시작했다. 혹시나 해서 첫째와 함께 나와 아내도 코로나 검사를 했지만  줄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지만 첫째는 하루 종일 열이 오르락내리락했고, 약을 먹고도 기침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우리 첫째는 아프면 안 된다. 아프니까 유치원에도 못 갔고, 하필 오늘은 유치원에서 특별히 작은 동물들을 빌려와 체험 학습을 하는 날이었다. 유치원 공지사항에 뱀, 도마뱀, 거북이, 개구리 등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신기한 동물들과 첫째 친구들이 찍은 사진을 보면서 아쉬움을 삼켜야만 했다.


그리고 첫째가 아프니까 우리 집은 하루 종일 비상상황이다. 우선 생후 50일 아기인 둘째에게 감기를 옮겨서는 안 되므로 셋 다 마스크를 쓰고 생활해야 했다. 애들은 열이 나고 기침을 해도 어른처럼 가만히 누워서 쉬지 않는다.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으니 아내와 나는 교대로 쉬면서 최대한 열심히 첫째와 놀아줘야만 했다. 이렇게 첫째가 하루 종일 집에 있고 아픈 만큼 손도 많이 가고 신경이 쓰이니까 상대적으로 둘째를 향한 관심이나 데리고 놀아주는 시간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첫째보다도 더 아프면 안 되는 사람은 바로 우리 둘째다. 그나마 다섯 살 오빠는 아프면 약도 먹을 수 있고, 더 아프면 병원도 갈 수 있다. 하다못해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말도 할 수 있다. 심지어 체온계로 열도 스스로 잰다. 그러나 둘째는 아파도 거의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 약을 먹거나 병원에 가는 것도 힘들고, 일단 그보다도 아픈 건지 아닌 지를 구별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다. 나와 아내는 둘째가 낮잠을 오래 자면 아파서 기운이 없는 건가 걱정을 했고, 밤에도 조용히 잘 놀고 있어도 뭔가 평소보다 힘이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다행히 일단은 응가를 평소보다 약간 자주 하고 조금 묽은 것 같다는 정도 외에 특이점은 없었다.


그런데 얘네보다도 더 아프면 안 되는 사람이 있다. 바로 나다. 일단 아내와 나 둘 중 한 명까지 만약 아프다면 안 아픈 사람이 혼자 세명을 돌봐야 하는데 그건 너무 버겁다. 그나마 아내보다는 내가 체력적으로나 기능적으로 세 명이 아파도 커버가 가능하고, 만에 하나 애들 중 한 명이 급하게 응급실에라도 가야 한다면 데려갈 수 있는 것도 나뿐이다. 오늘 첫째가 아프고 이런 비상상황을 겪으면서 우리는 내가 같이 휴직을 하지 않았다면 정말 힘들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사실 나는 원래 오후까지는 컨디션이 좋았다. 오전에 둘째는 자고 첫째가 약빨(?)로 열도 내리고 잘 놀고 있는 동안에 아내가 흔쾌히 보내줘서 수영도 다녀왔다. 그런데 저녁부터 갑자기 약간 몸살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감기 바이러스의 온상이 되어 있을 첫째 방의 침대에서 낮잠을 잔 것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저녁 메뉴로 선택한 라면과 냉동 피자를 너무 많이 급하게 먹은 것이 문제였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으슬으슬 춥고 머리도 띵해서 열도 재보았다. 36.9도. 다행히 열은 없다.


둘째를 재우고 문득 바깥 날씨를 보니 20도였다. 에어컨을 23도로 틀어놓았는데 밖이  춥다. 열대야가 있을 때처럼 얇은 반팔에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있던 것을 깨닫고 얼른 옷을 갈아입었다. 나는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다. 그렇지만  몸은 내가  아는데 원래 나는 감기 몸살이 오면 목부터 아픈 스타일이다. 목이  아프니까 일단은 괜찮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타이레놀을 하나 먹고 자야겠다.


이 밤이 지나면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아침을 맞이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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