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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26. 2022

외출 좋아하는 내향형 가족이 아플 때

우리들의 휴직일지: 아내 63일째

8월 26일(목) 날씨 모름


첫째가 아프다. 어젯밤부터 열이 나는데, 아침에 38도를 넘었다. 순간 코로나 격리기간이 떠올라 아찔했다. 진단키트 결과는 우선 우리 세 가족 모두 음성이다. 열감기라 하더라도 둘째가 옮으면 큰일이다. 오늘 하루 둘째는 꼼짝없이 안방 격리행, 우리 가족은 집콕 모드다. 


우리 가족은 내향형이다. 판단 기준은 타인과 같이 있음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느냐 아니냐다. 내가 볼 때 나와 첫째는 분명 내향형이고(첫째는 사람들을 좋아하지만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원하는 것도, 속상한 것도 많은 것이 나와 꼭 닮아 내가 피곤해지므로 잠정 내향형으로 보고 있다) 남편도 MBTI는 E로 시작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더 예민하다.  


하지만 남편과 나는 가볍게라도 매일 외출하는 걸 좋아하는데 오늘은 첫째도 유치원에 못 가고 첫째를 데리고 외출을 하기도 어려워 넷이 다 함께 집콕 육아를 하느라 몸도 정신도 피로하다. 나는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 약간 좀이 쑤시는 것 같다. 기분이 다운되고 마음이 축축 처진다고 해야 할까. 


첫째는 집돌이라 집에만 있어도 밖에 나가고 싶단 말 한마디 없는 데 자기 전에 오늘 하루 어땠는지를 물어보니 지루했다고 한다. 난 반대로 오늘 하루 종일 밖에 나가고 싶었는데 오늘 하루 전체를 놓고 보면 첫째 보다가 둘째 보다가 번갈아 옮겨 다니며 애들 케어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첫째는 재미가 없었을지 몰라도 남편과 난 이것 저거 놀거리 찾아주고 말 상대해주고 놀아주느라 평소보다 바빴던 거다.


다행히 오늘은 둘째가 효녀였다. 어제까진 원더윅스인가 싶어 걱정했는데 오늘 낮엔 세 시간, 두 시간씩 긴 낮잠을 두 번이나 잤다. 둘째가 낮잠을 잘 잤기 때문에 걱정했던 것보다 크게 힘들지 않게 애 둘과의 집 육아를 할 수 있었다. 남편과 나는 번갈아가며 낮잠도 잤다. 저녁을 라면으로 때우긴 했지만 점심과 저녁도 배달음식이 아닌 자급자족으로 잘 먹었다. 


오늘 같은 날은 육퇴 후 맥주 한 잔이 절실하다. 하지만 아픈 첫째와 혹시 아플지도 모르는 둘째를 두고 맥주는 사치다. 오늘 같은 날은 일기도 짧게 쓰고 일찍 자는 게 상책이다. 새벽 내내 첫째의 열보초를 서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집엔 욕조도 없고 지금 나에게 시간도 없어 불가능하지만, 만일 내게 잠깐의 여유가 허락된다면 그저 욕조에 들어가 시간에 쫓기지 않고 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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