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내누 Aug 27. 2022

길고 길고 긴 하루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64일째

8월 26일 금요일 서늘해짐


어제 일기를 쓴 이후로 24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어제 일기를 쓸 때까지만 해도 그냥 컨디션이 좀 안 좋구나라고 생각했다. 누웠지만 소화가 안 되고 몸살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쉽게 잠에 들지 못했다. 내가 새벽 수유 담당이었다. 새벽에 둘째가 깨서 분유를 타 가지고 갔더니 얘가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폭풍 응가를 했다. 자다 말고 왜 이러나 하면서도 얼른 치우고 먹이고 잘 생각에 서둘러 치우려 하는데 아뿔싸. 기저귀를 풀고 치우러 들고 다니는 사이에도 계속하는 것이 아닌가. 난장판이 되고 아내에게 SOS를 쳤다. 아내가 먹이는 동안 내가 정리를 했다.


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알지 못했다. 이것이 길고 힘든 하루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후의 하루는 길게 쓸 수 있는 여력이 없어서 시간대별 기록으로만 남긴다.


아침 8시. 눈을 떴는데 몸 상태가 엉망진창. 어지럽고 매스꺼워 열을 재보니 38도. 다시 1시간 정도 잠.


아침 10시. 첫째를 데리고 병원. 상태가 좋아지면 등원시키려 했으나 둘 다 약 처방받고 다시 집으로.


아침 11시. 환자끼리 붙어 있고 아내가 둘째를 보기로 협의. 첫째와 서로 배도 문질러 주고 동병상련.


낮 12시. 점심으로 죽 배달. 오후 계획을 세움. 약 먹고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다 나을 테니 그 뒤에 놀자!


오후 3시 30분. 낮잠을 자고 일어났지만 몸 상태가 더 안 좋음. 열이 전혀 내리지 않고 둘 다 여전히 38도.


오후 4시. 주말이 되기 전에 더 큰 병원에 가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아침에 갔던 병원에 전화.


오후 4시 30분. 병원 재방문. 소견서와 추가 약 처방 받음. 하지만 너무 걱정할 정도 증상은 아니라고 조언.


오후 5시. 약국에 들러 집에 오는 길에 활명수 마심. 아무래도 어제저녁 먹은 것이 채한 것 같다는 생각.


오후 5시 30분. 장모님과 장인어른 오심. 채한 것 같다고 하니까 손 따는 침을 가지고 오심. 그 사이 첫째는 열이 더 올라서 39도가 됨. 수건을 물에 적셔서 몸을 계속 닦아줌.


오후 6시. 장인어른 도움으로 10손가락 다 따고 엄지발가락도 땀. 까만 피가 동그랗게 나옴.


오후 6시 30분. 환자들 사이에서 둘째가 옮아서 열이라도 나면 큰일이라고 판단. 아내가 둘째를 데리고 어른들이랑 다 같이 장모님 댁으로 감. 나랑 첫째만 남음.


오후 7시. 같이 죽 먹고 약 먹기. 치카하기. 열이 빠르게 내리기 시작. 둘 다 상태 점점 좋아짐.


오후 8시. TV 잠깐 보고 미로 찾기 놀이. 수시로 열을 쟀는데 이제 37도대 초반으로 내려옴.


오후 9시. 책 읽기. 아내와 영상통화하고 아쉬워하는 첫째를 달래며 잠자리에 들 준비.


오후 10시. 엄마 보고 싶다고 계속 기침하면서 못 자는 애를 코 풀어줘 가며 겨우 재움.


오후 11시. 오늘 200번 정도 쟀던 체온계로 다시 재보니 둘 다 37도.


건강하게 아침에 만나자 아들아.




작가의 이전글 외출 좋아하는 내향형 가족이 아플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