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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28. 2022

감기의 끝에서 엄마를 외치다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66일째

8월 28일 일요일 맑고 청명한 가을


첫째의 감기가 본격화된 지 4일째다. 금요일부터 아내는 둘째를 데리고 처가댁으로 가고 집에는 나랑 첫째만 남아 있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나와 첫째가 앓기 시작한 목요일 전까지만 해도 아직 여름이었는데 4일 만에 가을이 되었다. 이 기간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특유의 긍정 회로를 최대치로 돌려 본다.


일단 우리 둘째는 외할머니 보살핌 속에서 무려 7시간이나 긴 잠을 잤다고 한다. 이제 거의 통잠에 근접해가고 있다. 못 본 지 3일째가 되니까 아빠 얼굴을 잊어버렸을까 봐 걱정이 된다. 집에 돌아와서도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깨는 정도로 자준다면 우리 가족의 일상은 훨씬 안정될 것이다. 지금 태어난 지 55일째이고 31일에는 50일 촬영이 예정되어 있다. 3일 동안 피부도 뽀얗게 더 예뻐지고 3일 뒤에는 50일 촬영 기념으로 8시 취침 7시 기상이라는 기적이 일어날 것 같다.


우리 첫째는 아주 센스 있게 50일 촬영 때 아프지 않고 미리 아파준 것 같다. 물론 아파서 유치원 작은 동물원 특집도 참가하지 못했고 할아버지 생신 기념 식사도 다음 주로 미뤄졌지만, 올 가을 감기 차례는 이걸로 끝났고 둘째에게 옮기지 않은 것만으로도 선방이다. 그리고 애들은 아프고 나면 훌쩍 커 있다. 이번에 아프면서 약을 먹어야 병이 낫는다는 것도, 기침은 참을 수 있다는 것도, 건강해야 행복하다는 것도 배웠다. 이제 4개월만 있으면 한국 나이로 6살이 된다. 더 이상 아기가 아니라 듬직한 큰아들이자 오빠다.


나는 이번 기회에 생활 패턴을 점검해볼 수 있었다. 급채로 나타나긴 했지만 결국 이번에 아팠던 원인은 몸살이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요즘 스스로에게 너무 무리한 일상을 강요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애들 돌보고 집안일도 하면서 유튜브는 주 1회 업로드, 매일 브런치도 써야 하는 데다 운동을 시작하면서 수영도 너무 열심히 했다. 근데 그러면서도 잠은 새벽 1~2시에 자고 낮잠은 커피냅으로 때웠다. 코피를 쏟을 만한 스케줄이다. 이제 유튜브는 시간이 될 때 조금씩 만들고 수영도 너무 힘 빼지 않고 쉬엄쉬엄 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겠다. 브런치 일기는 낮에 틈틈이 써두고 반드시 12시 전에 잘 것이다. 새벽 수유 당번도 좀 있으면 없어지겠지.


그리고 처가댁에서 둘째가 이렇게나 잘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실은 휴직을 하면서 오히려 내가 계속 집에 있는 만큼 장모님은 집에 자주 오시지 않았고, 오히려 관계가 전보다 소원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아내와 둘째가 처가댁으로 가면서 아내는 친정엄마와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둘째는 외갓집에서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었다. 아내의 조언을 듣고 나도 개선점을 생각했다. 아픈 사위와 손도 따주시고 반찬도 해서 보내주시는 장인 장모님이 근처에 살고 계셔서 정말 다행이다. 앞으로 더 잘해야 한다.


나와 아내의 관계도 큰 위기를 거쳤지만 치열하고 긴 대화 끝에 다시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가을이 오려면 반드시 장마와 가장 더운 날을 거쳐야만 하고, 해가 길어지려면 가장 밤이 긴 동지를 지나야만 한다. 주식도 하락장이 상승 랠리로 바뀌는 최저점이 있기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추세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모든 행복 회로가 작동하려면 일단 첫째의 감기가 뚝 떨어져야만 한다. 오늘은 기침도 잦아들고 해열제를 안 먹고도 37도 초반의 체온을 유지한 채 재울 수 있었다. 첫째는 자기 방에서 혼자 자지만 평소엔 잠이 들 때까지 엄마가 옆에 있어준다. 감기 때문에 엄마 없이 잔 게 3일째니까 억울할 만도 하다. 오늘은 결국 자기 전에 두 번이나 영상 통화를 하면서도 엄마를 목놓아 외치며 울음을 터트렸다.


자기 전에 약속한 대로 내일 아침에 엄마랑 유치원에 가려면 감기를 스스로 이겨내려무나 아들아. 너의 감기가 끝나면 이제 다가오는 9월에는 매일 웃음과 감동이 끊이지 않는 '슬기로운 휴직 생활'이 시작될 거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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