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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29. 2022

엄마의 자격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67일째 

8월 29일(월) 가을비


엄마에게 필요한 자격이 있다면 '인내심'과 '평정심'이 아닐까 싶다. 아이를 기르는 동안 엄마는 매번 롤러코스터를 탄다. 하루는 한없이 사랑스럽고 잘나 보이던 우리 아이가 하루는 세상 못나고 덜떨어진 것 같다. 그럴 때 엄마가 그런 감정을 여과 없이 아이에게 드러낸다면 엄마의 자격 '미달'이 된다. 엄마는 아이가 잘나든 못나든, 잘 나가든 못 나가든 아이를 마지막까지 믿어주고 안심시켜주는 단단한 완충장치가 되어야 한다. 


거창한 일기의 시작은 사실 5분 전의 '한숨'이었다. 오랜만에 첫째 아이를 재우고 나왔다. 열감기로 금, 토, 일을 고스란히 아빠와 보낸 첫째는 매일 울면서 내게 전화를 했다. 


"엄마, 보고 싶어. 엄마, 언제 와?"


난 첫째의 열감기가 둘째에게 옮으면 안 되기 때문에 둘째 아이와 근처 사는 친정엄마 집으로 피신을 가 있었다. 그러는 사이 첫째는 아빠가 돌보았다. 짧은 이산가족의 시간을 마치고 열이 내린 첫째와 오늘 재회했다. 아이는 신나 보였고 나 역시 애틋한 마음으로 아이를 등원시켰다. 


하원 시간. 첫째 킥보드를 챙겨 유치원 버스를 마중 나갔다. 버스가 도착했고 아이는 여러 아이들 중 굼뜨게 유독 벨트를 푸르지 못하고 천천히 버스에서 내렸다. 나를 본체만체하고 내가 가져온 킥보드를 성큼 타더니 놀이터로 앞장서갔다. 놀이터에 도착하자마자 흥분을 한 건지 신이 난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몸짓을 하며 방방 뛰더니 또래 친구 아이들 사이를 빙글빙글 돌다가 넘어졌다. 그 와중에 또래 다른 친구들은 다들 차분하게 엄마와 놀이터에 도착해 친구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정신없고 불안해 보이는 첫째의 행동을 나는 통제할 수도 없었고, 누군가와 갈등이 생기거나 사고를 치는 것도 아니라 마땅히 통제할만한 명분도 없었다. 그저 정신없이 구는 것뿐. 그러다 첫째의 최애 여사친과 그네를 타는데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땅에 닿을 듯 말 듯하다가 바닥에 떨어져 버리는 장난을 몇 번 치더니 결국 그 여사친이 타는 그네와 부딪혔다. 첫째는 모지리처럼 "너 때문에 부딪혔잖아!"라고 짜증을 냈고 늘 이해심 많은 그 여사친조차 첫째를 두고 멀리 가버렸다. 첫째는 그렇게 혼자 남겨져 "엄마, 배가 아파"라고 하더니, 응가가 나오기 일보 직전의 아이처럼 발을 동동 구르며 집으로 올라와 거하게 응가를 했다.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첫째는 아마도 응가가 마려웠던 것 같다. 어쩌면 유치원 버스에서부터 느끼고 있었을지 모른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고 놀이터에는 가고 싶고 그런데 응가가 계속 마렵고 배도 아프고 불편한 감정이 들어 이상한 행동들을 했던 것 같다. 그러면 그냥 "응가 마려워. 응가하고 놀래"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 또한 내 추측에 불과하니 원인을 정확히 진단하긴 어렵다. 첫째가 자주 하는 산만하고 기이한 행동들을 다른 동네 아이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렵다. 괜히 바닥에 엎드리거나 지나치게 푸드덕대서 주변 사람들과 부딪히거나 하는 행동들로 매번 나나 남편이 주의를 준다. 


처음 있는 일도 아닌데 난 오늘따라 여러 가지 부정 회로에 빠졌다. 첫째가 ADHD이거나 의사표현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언어장애'가 있는 건 아닌지. 아님 남편의 육아휴직 후 자주 첫째 앞에서 부부싸움을 해서 첫째가 정서불안이 된 것은 아닌지 등 여러 개의 시나리오를 접었다 펼치며 첫째와 저녁 내내 함께 시간을 보냈다. 


아이를 재우며 이야기를 할 때도, 어떤 질문에도 "모르겠어" 혹은 "기억이 안 나"라고 하는 첫째를 재우며 속상한 마음을 티 내지 않으려 부단히 애를 썼다. 첫째는 글을 빨리 깨우친 아이였다. 숫자, 알파벳, 한글을 세 살 전 마스터했다. 하지만 말이 빠르진 않았다. 그렇다고 느리지도 않았는데 4살, 5살 점점 커나갈수록 되려 말수가 줄어드는 첫째를 보면 어쩌면 아이가 자신이 말을 못 한다는 자각 하에 말을 안 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된다. 아이는 생각을 말로 옮기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 가끔 본인 스스로도 답답해한다. 다섯 살이라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이와 상관없는 문제일지도 모른다. 


오늘 첫째를 재우기까지 첫째의 말도 안 되는 생트집, 정신없음, 그 와중에 묻는 말엔 침묵하는 순간들에서 느끼는 좌절감과 분노를 참아냈다. 아이에게 이성적으로 가르쳐주려 노력했고, 여러 번 욱하는 마음을 꾹꾹 참았다. 아마 이 일기를 다 쓴 뒤 또 우리 부부는 첫째 이야기를 나누게 될 거다. 머리로는 안다. 여러 가지 판단들이 아직 너무 이르고, 이런 불안이 아이에게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지금은 아이를 믿어주고 기다려주고 아이가 불안하면 느긋하게 '괜찮다'라고 말해줘야 하는 게 나의 엄마 된 자격이다. 내 머리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내 마음은 너무 우울하고 초조하다.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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