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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30. 2022

학부모가 된다는 것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68일째

8월 30일 화요일 비


아이를 키우면 누구나 학부모가 된다. 우리 첫째가 5살 유치원생이 되면서 나도 학부모가 됐다. 사실 어린이집에 보낼 때는 학부모라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았는데 유치원은 확실히 다르다. 더 체계적인 커리큘럼은 물론 25명 가까운 아이들과 한 반이 되어 단체생활도 경험한다. 부모 입장에서는 마냥 다 잘하는 줄 알던 내 자녀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키나 몸무게는 평균 이상인지, 밥 먹기, 화장실 가기, 말하기와 듣기 같은 기본적인 능력들을 통해 잘 성장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다. 사실 말하자면 이 시기의 아이들은 아이가 평가를 받는다기 보다는 부모가 제대로 키우고 있는지를 평가하는 것에 가깝다.


그래서 유치원 선생님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조심스러우면서도 새롭다. 특히 가끔 전화로 상담을 하게 되면 부모는 전혀 볼 수 없는 유치원에서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전해 들을 수 있다. 사실 아이에게 물어보면 되지만, 우리 첫째는 유치원에 대해 별로 자세히 말하는 편이 아니다. 물어봐도 건성으로 대답하거나, 아니면 들어도 제대로 파악할 만큼의 정보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자애들 대부분이 그렇다고 한다.)


오늘은 오랜만에 유치원 선생님과의 상담이 있었다. 요즘 아프기도 했고 뭔가 예전보다 주눅이 들어 있는 것 같다며 걱정하는 아내가 먼저 요청해서 진행된 것이다. 내가 보기에도 요즘 우리 첫째가 예전만큼 유치원 생활을 즐거워하거나 놀이터 친구들과 잘 노는 것 같지가 않았기에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어젯밤 아내와 머리를 맞대고 요즘 말수가 너무 적은 것 같은 첫째에게 다른 방향의 자극을 주자고 의논했던 차였다.


그런데 매번 그렇지만 선생님에게는 우리가 알던 것이나 집에서 보던 모습과는 다른 면모를 듣게 되었다. 예전에 상담했을 때의 경우는 집에서 밥을 너무 안 먹어서 유치원에서는 식습관이 더 엉망일까 봐 걱정했는데, 선생님은 유치원에서는 밥을 엄청 잘 먹는다고 했었다. 이번에도 비슷했는데 집에서 요즘 말이 너무 없는 것 같다고 했더니 유치원에서는 너무 요구사항이나 조건들을 선생님에게 많이 얘기해서 오히려 버겁다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 외에 다른 부분들에서는 집에서 느껴졌던 개선점들을 유치원에서도 보이고 있었다.


부모 입장에서는 다 잘하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얘기를 듣는 것이 가장 기분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면에서 완벽한 아이는 없고 특히 5살에는 더욱 그렇다. 결국 내 아이 다 잘하고 예쁘고 귀엽죠? 하면서 우쭈쭈 해주는 것보다는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부족한 부분을 짚어주는 선생님이 좋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머리로 생각은 하지만 기분은 또 그렇게 좋지만은 않다. 서두에 말했듯이 아이의 부족한 모습은 부모가 잘 못 키웠거나, 부모의 안 좋은 면을 배웠기 때문일 테니 결국 내가 부정적인 평가를 받은 셈이라 그럴 수밖에 없다. 결국 오늘도 밥 먹는 시간에는 첫째에게 여러 가지 안 좋은 얘기들을 하고 말았다. 100번을 잔소리를 했던 건데도 안 바뀌었거나, 오히려 더 아기 때보다 밥을 제대로 안 먹는 모습을 보니까 울화통이 터져버렸다. 분명 선생님도 5살에는 밥 먹는 시간이 스트레스가 되면 더 역효과니까 좋은 분위기로 식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지만 막상 잘 되지가 않았다. 밥 먹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고 유치원에서 짜증이나 화를 많이 낸다고 했던 것도 떠올랐다. 다 나를 닮아서 그런 것 같다.


이제 겨우 학부모 1년 차인데 고작 유치원에서 들은 피드백만으로도 멘탈이 이렇게 흔들려서는 안 된다. 이제 더 나이를 먹고 초중고등학교에 가면 갈수록 학부모로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일들이 벌어지거나 가슴에 비수가 꽂히는 피드백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집에서부터 원칙과 기준을 바로 세우고 좋은 본보기를 보여야만 한다. 그리고 한편으론 마음을 조금 내려놓고 안 좋은 얘기도 흘려 넘길 수 있는 유연함을 연마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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