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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Sep 01. 2022

아프냐, 나도 아프다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70일째

9월 1일 목요일 맑고 시원


수영장에 갔다 와서 아내와 점심을 뭘 먹을지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유치원에서 전화가 왔다. 유치원에서 오는 연락은 무소식이 희소식이다. 원래는 '키즈노트'라는 앱으로 알림장을 주고받고 소통을 하고 이렇게 일과 시간에 갑자기 전화가 올 일이 전혀 없다. 


받았더니 역시나다. 첫째가 오전 놀이 끝나고 구토를 2번이나 해서 전화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감기 때문에 지난주에 이틀이나 결석을 하고 병원에 갔을 때도 약간의 장염 증세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었다. 아이들의 장염은 어른들과는 다르게 나타나는지 설사가 아니라 구토를 하는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전에도 6월쯤 한번 구토와 발열이 나타나서 응급실에 갔는데 장염이라고 했던 적이 있었다. 다행히 그때의 경험이 있어서 구토를 했다는 말을 들어도 아주 크게 당황스럽지는 않았다.


일찍 하원하는 게 좋겠다는 의견에 따라 첫째를 데리러 갔다. 평소의 역동성은 온데간데없고 축 처져서 터덜터덜 나오는 모습이 정말 힘이 없어 보였다. 다른 애들은 점심시간이다. 선생님들께 힘없이 인사를 하고 원을 나서는 모습이 참 애처로웠다.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집에 오는데 또 한 번 길가 풀숲에다 구토를 했다.


애가 아프면 부모 마음은 당연히 좋지가 않다. 자주 아프면 더더 더욱 그렇다. 운동선수들 인터뷰를 보면 건강한 몸을 물려주신 부모님께 감사한다는 얘기를 하곤 한다. 그렇게 사람이 건강하고 잘 아프거나 다치지 않는 것은 부모가 줄 수 있는 큰 자산이다. 하지만 우리 첫째는 몇 달 전에 코로나도 쎄게 앓았고, 그 이후로도 유치원에 장염이나 감기가 좀 돈다 싶으면 어김없이 걸리곤 했다. 시력이 안 좋아서인지 유독 자주 넘어지거나 부딪혀서 팔다리도 상처 투성이다. 피부에 아토피 끼도 있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정말 얘가 아픈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닌 거 같았다. 허약체질인 나 때문에 우리 첫째도 이렇게 자주 아픈가 하는 생각에 속이 쓰려온다.


그런데 아파서 하루 종일 누워만 있을 것 같았던 첫째는 집에서 죽을 먹이고 약을 먹이니까 갑자기 에너자이저 모드로 돌변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건 아니겠지만 마치 유치원에 있기 싫어서 꾀병이라도 부린 것만 같았다. 상태가 너무 좋아지자 아내는 날씨가 좋은데 집에만 있기 아깝다며 첫째를 데리고 도서관으로 갔다. 그러고는 심지어 4시 반에 하원한 유치원 친구들이랑 놀이터에서 거의 2시간을 놀고 들어왔다. 대체 점심때 그렇게 몇 번이나 구토를 하고 축 늘어져있던 애가 맞나 싶을 정도였다.


아내가 놀이터에서 습득한 정보를 공유해 주었다. 다른 애들도 지난주랑 이번 주에 죄다 아팠댄다. 5시에 예정되어 있던 유치원 선생님과의 상담 전화 때도 물어보았다. 우리 애가 딱히 다른 애들보다 더 자주 아픈 편은 아니라고 한다. 신체 발달이나 근육을 사용하는 운동능력도 평균 이상이라고 했다. 갑자기 마음이 놓인다.


그러다가 문득 냉장고에 붙여놓은 달력을 보니 8월이 다 지워져 있었다. 9월 1일이다. 6월에 휴직을 시작했는데, 물론 이것저것 열심히 하고 꽤 계획대로 되어가는 것도 있지만 벌써 3번이나 달이 바뀌었다. 시간이 너무 빠르다. 갑자기 또 가슴 한구석에 쎄하다. 시계를 거꾸로 매달아도 복직 날짜는 다가온다. 특히나 이제 둘째가 같이 외출을 할 수 있게 되면 앞으로의 몇 달 간은 네 식구가 추억을 쌓을 유일무이한 최고의 찬스다.


아들아. 아파서 머뭇거리기엔 엄마아빠의 휴직이 너무 짧다. 이제 웬만하면 아프지 마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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