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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Sep 02. 2022

엄마 냄새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71일째

9월 2일(금) 화창한 초가을 날씨


둘째가 태어난 뒤에도  마음의 7할은  첫째에게  있었다. 나머지 2할은 남편과 어떻게 더 잘 살것인가, 미안하게도 남은 1할만이 둘째에게 쓰였다. 첫째가 7할이나 차지한 이유는 첫째의 상태가 예전보다 불안정했기 때문이다.  


지난 두 달간 첫째의 인생에 급격한 변화들이 생겼다. 동생이 생겼고, 주양육자가 자주 바뀌었다. 7월 한 달간은 거의 아빠랑만 시간을 보냈으며, 최근엔 열감기로 엄마와 삼일 간 떨어져 지내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첫째가 성장도 했지만 잦은 변화들에 신경질과 화가 많아졌다. 말수도 줄었고, 자주 혼나다 보니 눈치도 자주 보는 것 같았다.   


첫째를 바라보는 우리 시선도 불안해졌다. 같이 있으면 언제 떼를 쓸지 몰라 초조했다. 유치원에서 뭘 하는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을 걸어도 대답을 안 해서 언어발달에 문제가 있진 않나 걱정까지 했다. 똘망똘망 귀여웠던 우리 첫째에게 벌써 영(0)춘기가 온 것인가 고민이 많아져 유치원 담임선생님께 상담까지 신청했다.  


그러던 중 나는 한 권의 책을 알게 됐다. 우연히 들어간 블로그에서 읽은 이 구절 때문이다.  


엄마가 아이를 귀여워하는 마음으로 보면 아이 몸에는 귀여운 냄새가 밴다. 아이는 어딜 가나 귀여운 냄새를 풍기고 사람들은 아이를 귀여워하게 된다. 엄마가 아이를 못났다고 보면 아이 몸에 못난 냄새가 밴다. 아이가 자기도 모르게 못난 냄새를 풍기고 사람들은 아이를 왠지 모르게 못난 아이 취급한다. 이게 엄마 냄새다. 엄마 살의 냄새가 아니라 엄마 마음의 냄새다... 사랑받은 아이는 사랑을 끌고 미움받은 아이는 미움을 끌어당긴다. 엄마 냄새 법칙이 우주의 법칙이다. - <엄마 심리 수업>

그간 내가 첫째를 대할 때의 태도는 이랬다. '밥을 안 먹어 걱정이다. 나를 닮아 눈이 나빠 다섯 살부터 안경을 써서 걱정이다. 강박이 너무 심하다. 별 걸 다 규칙대로 하려고 한다. 왜 이렇게 부산하냐. 별 것도 아닌 걸로 생떼를 쓴다'   


물론 내 아들이기에 첫째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한다. 칭찬도 많이 해주는 편이다. 그러나 내 마음 한편에 들키기 싫은 걱정과 불안이 자리 잡고 있다. 책에서 저자가 말하듯 아이는 부모가 입으로 해주는 '입말'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맘말'을 더 잘 안다. 우리 첫째는 내 마음속 못난 말들을 어느새 다 느끼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나는 어떤 냄새를 풍기는 엄마일까. 백만 불짜리 아이를 앞에 두고 그 아이의 못난 점만 떠올리며 걱정하고, 바꾸려 하는 엄마이진 않았나.   


밥 먹는 시간은 첫째가 제일 싫어하는 시간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밥 먹는 시간이 불편하다. 첫째가 밥 먹을 때만 되면 유독 산만하고 말을 안 들어 많이 혼내왔다. '밥과 반찬을 골고루 먹나, 숟가락질은 잘하나, 반찬을 자꾸 흘리지 않나, 손으로 밥을 만지지 않나' 두 눈에 불을 켜고 엄마, 아빠 네 개의 눈이 자기만 쳐다보고 실수할 때마다 지적질을 해내는데 나 같아도 체해서 밥이 제대로 안 넘어가고 밥 먹는 시간이 싫어질 것 같았다.


눈이 나빠 안경을 맞추러 다닐 때의 첫째도 유난히 부산스럽고 말을 안들었었다. 그때의 우리를 떠올려봤다. 엄마, 아빠가 세상 무거운 표정으로 안경점에 들어가 이 안경, 저 안경 써보길 권유하고 뭘 쓸 때마다 어두운 표정을 짓는다. (당시 진짜 그랬다. 꼬맹이가 안경을 쓰는 게 마음이 아파 뭘 써도 말로는 '멋지다'면서 표정은 어두웠고, 어떤 안경을 써도 아이의 맨 얼굴보다 더 나을 순 없기에 기분도 안 좋았다) 엄마는 의사나 안경사 앞에서 "제가 눈이 나빠서 애가 닮았나 봐요 ㅠㅠ" 하며 한숨을 푹푹 쉰다. 나 같아도 마음이 무거울 테고 아이는 그에 대응하듯 뭔가 부정적인 반응을 했을 것 같다.  


아이가 커갈수록 아이는 엄마 마음을 잘 알아챈다. 이제 내 마음을 첫째에게는 숨기기 어렵다. 그런데 내 표정, 말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읽힌다니. 나는 그동안 별 것도 아닌 일로 아이를 지적하며 고치려 했던 나, 아이의 사소한 행동들을 일반화시켜 부정적인 기질, 성격, 태도로 판단했던 나를 반성했다. 아이에게 닿은 나의 엄마 냄새는 향긋하지 않았을 거다.  


반성을 했으니 고쳐야지. 아이를 진심으로 대하고 아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귀여워하는 마음으로 대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티끌 같은 아이의 흠을 고쳐준답시고 걱정하고 지적하는 행동을 자제했다. 오늘 아이는 단 한 번도 떼를 쓰거나 신경질 내지 않았다. 감기약을 먹을 때에도 처음 먹는 쓴 약에 대한 두려움을 표현했지만 기다려주자 참아냈고 스스로 약을 먹겠다고 말한 뒤 약속을 지켰다. 아이에게 다시 향긋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바뀐 내 엄마 냄새가 첫째에게도 묻어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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