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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Sep 03. 2022

이젠 극단적이지 않기로 해요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72일째

9월 3일 토요일 서늘해진 가을바람


오늘은 아버지 생신 기념 저녁식사를 했다. 원래 지난주에 하려다가 첫째와 나의 건강 문제로 미뤄진 것이다.  아내가 밀푀유 나베와 잡채 등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며 며느리 노릇을 했다. 나도 미역국을 끓여서 약간의 힘을 보탰다. 가을 전어 회도 사 오고 미리 준비한 추석 선물도 드리고 즐겁고 화기애애한 저녁시간이었다.


우리 첫째는 워낙 할아버지 할머니를 좋아하고 잘 따른다. 여기에 이번에 둘째가 태어났을 때 도움도 많이 받으면서 부모님과의 관계는 어느 때보다 좋아졌다. 아마 내 평생을 통틀어 가장 좋은 것 같다.


사실 한때 부모님과의 관계가 최악으로 악화되었던 가장 큰 원인은 종교 때문이었다. 부모님은 굉장히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나도 어릴 때는 부모님을 따라 일상적으로 교회에 갔고, 매주 일요일은 물론이고 크리스마스나 12월 31일도 교회에서 보내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러다 성인이 되고 군대에 갔다 오고 머리가 크고 신앙이라는 것에 의문을 갖게 되면서 종교와 멀어지게 됐다. 같이 교회에 잘 다니던 아들이 점점 불신자가 되자 아버지는 화도 내고 달래도 보고 설득도 했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는 법이다.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참 모든 면에서 극단적인 분이었다. 뭐든지 간에 그냥 적당한 수준으로 하지 않고 모 아니면 도다. 교회만 해도 전에는 매일 새벽기도에 수요예배, 금요 기도회 이런 것들도 다 가고 일요일에는 아침일찍 갔다가 제일 마지막에 나왔다. 요즘은 은퇴하고 시작한 일 때문에 그냥 일요일에만 가시게 됐다.


이뿐만이 아니다. 좋아하는 음식은 지나치게 많이 드셨다. 예를 들어 횟집에 가면 혼자 한 접시를 해치울 수 있었다. 대체 술도 안 마시면서 그 많은 회가 질리지 않고 계속 들어가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포도를 먹으면 한송이는 뚝딱이고, 퍼먹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뜯으면 한 통을 다 비웠었다. 식빵에 발라먹는 딸기잼도 식빵보다 잼이 더 많은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떡칠을 했다. 베트남 믹스커피 G7을 선물을 받았는데 맛있다고 하루에 5잔씩 타서 드셨다. 좋아하시는 게 대부분 단 것들이라 '어릴 때 가난해서 군것질을 못 해본 아이가 성인이 되면 이렇게 인생에서 결핍되었던 당에 대한 집착이 생기는 것인가' 생각한 적도 있다.


이것들이 과거형이 된 이유는 몇 년 전에 갑자기 당뇨 수치가 급격히 올라오면서 혈당 조절을 신경 써야만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전에는 아버지가 저렇게 단 걸 많이 먹는데도 당뇨는 전혀 무관한 것을 보고 단 걸 많이 먹는다고 당뇨에 걸리는 건 아니구나 했었다. 그 생각은 틀린 거였다.


사실 음식만이 아니다. 아버지는 여러 가지 운동을 좋아하고 꾸준히 열심히 하시는 편이다. 근데 그것도 뭘 하든 너무 과하다. 달리기를 하면 하프 마라톤 완주를 해야 하고, 자전거를 타면 왕복 2시간도 넘는 산길을 자전거로 출퇴근을 했다. 대체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전에 내가 군대에 있을 때 전화를 하면 어떤 날은 아주 숨이 넘어갈 지경의 목소리로 받아서 대답도 잘 못 하시길래 왜 그런가 했더니 그게 마라톤 연습을 하는 시간이라 그런 거였다. 휴가를 나갔더니 입대 전보다 폭삭 늙어있는 아버지를 보고 건강하려고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그러다 쓰러질 것 같다고 했다. 결국 하프 마라톤 완주를 몇 번 하고 얼마 뒤에 그만두셨다.


여하튼 이렇게 뭘 하던 극단적으로 끝장을 보고 과유불급의 살아있는 표본 같은 우리 아버지는 결국 세월이 지나면서 과했던 것들이 탈이 나거나, 다른 외부 요인으로 자제하게 되면서 이제 꽤 적정선을 지키는 것들이 많아지게 됐다. 그만큼 개인 건강이나 과해서 생겼던 문제들도 없어졌다.


물론 아직도 그 버릇이 없어진 건 아니다. 오늘 저녁에도 식사를 마치고 커피를 타려고 하면서 당연히 드실 줄 알고 물어보니, 이젠 커피를 안 드신다는 거였다. 너무 과하게 마시다가 이젠 또 0잔이 된 거다.


"그냥 하루에 한 잔만 마시면 괜찮을 텐데 왜 꼭 극단적으로 5잔 아니면 0잔 이러시는 거예요..."


어머니도 "그러니까~내 말이~" 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실은 음식이라든가 운동, 그런 것들 뿐만이 아니다. 아버지는 자녀의 양육 혹은 교육에 있어서도 그렇다. 나에게는 뭐든지 굉장히 엄격하고, 칭찬에 인색하고, 마음에 안 들면 잔소리를 넘어 설교를 2시간씩(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진짜로) 했었다. 반면 손자인 우리 첫째에게는 뭐든지 다 들어주고, 모든 걸 칭찬하고, 단 한마디도 싫은 소리를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나한테 너무 애한테 엄하게 하는 거 아니냐고 나무랄 정도다.


사실 아버지에겐 죄송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그런 모 아니면 도의 면모를 반면교사로 삼고 있다. 무엇이든지 극단적이지 말아야겠다고 늘 생각한다. 그래도 배운 게 도둑질이라 어느 정도 닮은 모습을 보일 때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적어도 아이들에게만큼은 무조건 엄하게도, 뭐든지 다 오냐오냐 하지도 않을 것이다.


아버지는 나보다 30년이나 더 사셨으니 깨달으셨으면 좋겠다. 이젠 극단적이지 않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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