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81일째
9월 12일(월) 습하고 더운 초가을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뭘 하지? 양가 부모님도 다 찾아뵈었고, 귀경길 차량으로 길이 혼잡할 테니 멀리 나가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았다. 우리 집 70일 된 아가와 5살 남아, 삼십 대 후반 부부 총 4인을 모두 만족시킬 옵션은 없어 보였다.
첫째의 친구들 중 누군가에게 연락해 같이 놀게 하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첫째 여사친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여사친이 우리 첫째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내용은 나는 너와도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본인이 친한 다른 여자 친구가 있으니 너도 걔랑 사이좋게 지내며 다 함께 놀면 어떻겠느냐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우리 첫째는 단호박이었다. 첫째 역시 음성 메시지로 답신을 보냈다. 내용은 그 친구랑은 친하게 지낼 수 없고 너랑만 놀고 싶고, 그 외에 다른 남자 친구들 누구누구랑 놀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여자인 친구는 1명 하고만 친하게 지낼 수 있어서 (아무도 그래야 한다고 말 해준 적 없다;) 이미 이 여자인 친구와 절친이기 때문에 다른 여자인 친구는 만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남사친은 세 명까지 된다나? 마음의 방이 문어발은 아니고, 소수정예인 점이 엄마인 나를 닮았구나, 하는 마음에 웃픈 생각이 들었다. 소수정예로 사람을 사귀는 사람은 어느 정도 외로움을 달고 살아야 하는데, 감당할 수 있겠나 싶었다.
암튼 귀염 뽀짝한 둘의 음성메시지에 나와 그 여사친 엄마 모두 박장대소를 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어가다 시간이 맞아 오늘 같이 모여 놀게 되었다. 둘째는 아빠와 집에 남았고 나와 첫째, 첫째 여사친 친구와 그 엄마 넷이 한강에서 만났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최신식 놀이터였다. 방방이가 있고, 요새 같은 미끄럼틀도 있었다. 여사친 엄마는 아이들의 성지와도 같은 놀이터 한켠에 돗자리를 편 채 베이스캠프를 잡고 있었다.
그렇게 본진을 잡은 뒤 아이들은 신명 나게 놀다가 시시각각 다른 형태로 엄마를 불렀다. 이것 좀 보라고, 넘어졌다고, 여기 올라가겠다고, 얘가 나한테 소리 질렀다고, 목마르다고, 배고프다고 등등. 주변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애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먹을 게 지천에 있어 그런 지 비둘기가 계속 날아다녀 식겁했다. 주변 어느 돗자리의 어린아이들이 비둘기 몰이를 하느라 비둘기가 계속 얕은 비행으로 사방을 날아다니고 정신이 좀 없긴 했지만, 그 엄마와 여러 가지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가위는 잘 보냈는지, 둘의 원생활과 교우관계에 대하여, 6세에 보낼 일유 / 영유의 비교, 학습지에 대한 후기, 아이들이 얼마나 빠르게 자라는지 등. 늘 그렇듯 똑부러지며 배려심 넘치는 여사친 엄마와의 대화는 알차고 즐거웠다. 그 와중에 애들에게 틈틈이 간식을 먹였는데, 과자와 초콜릿 등에 마음에 빼앗긴 아이들은 과일을 잘 먹지 않았다. 남편이 민트 초콜릿도 싸주어서 아이들에게 맛보여줬더니 두 아이의 민심이 민초파와 반민초파로 취향이 극명하게 달라짐을 알 수 있었다. 내 아들이 민초파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집에 와 씻기고 재우면서 첫째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첫째는 또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했다. 그중 강한 어조로 엄마와 결혼을 하고 싶다며, 내일 당장 엄마와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결혼이 뭔지 아느냐고 물어보니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말해줬는데 선생님이 길게 얘기해서 잘 모르겠다고 횡설수설했다. 아마 졸려서 그런 것 같다. 그치만 결혼의 근본이 '사랑'인 줄은 아는 것 같았다. 본인과 내가 결혼이 가능한 사이로 인식하는 것이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서인 듯했다. 그리고 오늘 정말 재밌었는데 많이 속상했다고도 했다. 아이가 속상할 만한 일이 있었기에 잘 다독이며 아이를 재우고 나왔다.
우리 아이의 단호박 같이 단단하고 따듯한 사랑을 원탑으로 받는 나는 너무 행복한 사람이다. 그 아이의 마음이 망가지지 않도록 잘 단도리하고 좋은 토양이 되어주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오늘도 순수한 아이의 모습에 코끝이 여러 번 찡했다. 힘들지만 행복한 육아를 했다. 연휴 마지막 날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