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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Sep 12. 2022

여사친은 한 명만 가능하고요, 민초단입니다.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81일째

9월 12일(월) 습하고 더운 초가을


추석 연휴 마지막 날을 앞두고 고민이 많았다. 뭘 하지? 양가 부모님도 다 찾아뵈었고, 귀경길 차량으로 길이 혼잡할 테니 멀리 나가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았다. 우리 집 70일 된 아가와 5살 남아, 삼십 대 후반 부부 총 4인을 모두 만족시킬 옵션은 없어 보였다.


첫째의 친구들 중 누군가에게 연락해 같이 놀게 하면 어떨까 하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첫째 여사친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 여사친이 우리 첫째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내용은 나는 너와도 친하게 지내고 싶은데, 본인이 친한 다른 여자 친구가 있으니 너도 걔랑 사이좋게 지내며 다 함께 놀면 어떻겠느냐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우리 첫째는 단호박이었다. 첫째 역시 음성 메시지로 답신을 보냈다. 내용은 그 친구랑은 친하게 지낼 수 없고 너랑만 놀고 싶고, 그 외에 다른 남자 친구들 누구누구랑 놀고 싶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여자인 친구는 1명 하고만 친하게 지낼 수 있어서 (아무도 그래야 한다고 말 해준 적 없다;) 이미 이 여자인 친구와 절친이기 때문에 다른 여자인 친구는 만들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반면 남사친은 세 명까지 된다나? 마음의 방이 문어발은 아니고, 소수정예인 점이 엄마인 나를 닮았구나, 하는 마음에 웃픈 생각이 들었다. 소수정예로 사람을 사귀는 사람은 어느 정도 외로움을 달고 살아야 하는데, 감당할 수 있겠나 싶었다.


암튼 귀염 뽀짝한 둘의 음성메시지에 나와 그 여사친 엄마 모두 박장대소를 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어가다 시간이 맞아 오늘 같이 모여 놀게 되었다. 둘째는 아빠와 집에 남았고 나와 첫째, 첫째 여사친 친구와 그 엄마 넷이 한강에서 만났다. 지은 지 얼마 안 된 최신식 놀이터였다. 방방이가 있고, 요새 같은 미끄럼틀도 있었다. 여사친 엄마는 아이들의 성지와도 같은 놀이터 한켠에 돗자리를 편 채 베이스캠프를 잡고 있었다.


그렇게 본진을 잡은  아이들은 신명 나게 놀다가 시시각각 다른 형태로 엄마를 불렀다. 이것  보라고, 넘어졌다고, 여기 올라가겠다고, 얘가 나한테 소리 질렀다고, 목마르다고, 배고프다고 등등. 주변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애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먹을  지천에 있어 그런  비둘기가 계속 날아다녀 식겁했다. 주변 어느 돗자리의 어린아이들이 비둘기 몰이를 하느라 비둘기가 계속 얕은 비행으로 사방을 날아다니고 정신이  없긴 했지만,  엄마와 여러 가지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가위는 잘 보냈는지, 둘의 원생활과 교우관계에 대하여, 6세에 보낼 일유 / 영유의 비교, 학습지에 대한 후기, 아이들이 얼마나 빠르게 자라는지 등. 늘 그렇듯 똑부러지며 배려심 넘치는 여사친 엄마와의 대화는 알차고 즐거웠다. 그 와중에 애들에게 틈틈이 간식을 먹였는데, 과자와 초콜릿 등에 마음에 빼앗긴 아이들은 과일을 잘 먹지 않았다. 남편이 민트 초콜릿도 싸주어서 아이들에게 맛보여줬더니 두 아이의 민심이 민초파와 반민초파로 취향이 극명하게 달라짐을 알 수 있었다. 내 아들이 민초파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집에 와 씻기고 재우면서 첫째와 좀 더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첫째는 또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을 했다. 그중 강한 어조로 엄마와 결혼을 하고 싶다며, 내일 당장 엄마와 결혼을 하겠다고 했다. 결혼이 뭔지 아느냐고 물어보니 유치원에서 선생님이 말해줬는데 선생님이 길게 얘기해서 잘 모르겠다고 횡설수설했다. 아마 졸려서 그런 것 같다. 그치만 결혼의 근본이 '사랑'인 줄은 아는 것 같았다. 본인과 내가 결혼이 가능한 사이로 인식하는 것이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자주 해서인 듯했다. 그리고 오늘 정말 재밌었는데 많이 속상했다고도 했다. 아이가 속상할 만한 일이 있었기에 잘 다독이며 아이를 재우고 나왔다.


우리 아이의 단호박 같이 단단하고 따듯한 사랑을 원탑으로 받는 나는 너무 행복한 사람이다. 그 아이의 마음이 망가지지 않도록 잘 단도리하고 좋은 토양이 되어주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오늘도 순수한 아이의 모습에 코끝이 여러 번 찡했다. 힘들지만 행복한 육아를 했다. 연휴 마지막 날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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