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내누 Sep 16. 2022

우리들의 적응 일지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84일째

9월 15일 목요일 흐림


인간은 적응하는 동물이다. 아무리 처음에는 생소하고 어색했던 것이라도 자꾸 반복하고 시간이 흐르면 적응해낸다. 그러나 무언가에 이제 익숙해졌다 싶을 때쯤이면 또 어김없이 환경이 바뀌거나 다음 미션이 등장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적응력을 발휘하면서 인생은 흘러가고 한 걸음씩 성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적응력도 사이클이 있다. 인생에서 특히나 더 많이 필요로 하는 시기와 별로 없어도 되는 시기가 존재한다. 우리 가족의 경우는 네 명 모두가 극도의 적응력이 필요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우선 오늘로 생후 73일째인 우리 둘째는 하루하루가 적응의 연속이다. 모든 것이 처음이고 새롭다.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보는 데 최적화된 온실과도 같은 신생아실에서 집으로 왔던 날과 비교하면 몰라보게 잘 자라주고 있다. 낮엔 엄마 아빠 오빠에게 생글생글 웃어주면서 놀고 밤에는 잔다. 이젠 분유도 한 번에 거의 200ml를 거뜬히 먹고, 밤잠도 한 번에 최소 5~6시간 이상을 자고 있다. 물론 아직도 자기 팔다리도 잘 컨트롤 못 하고, 뭔가 안 내키면 동물처럼 끙끙대다가 울어재끼는 건 여전하지만 이제 꽤나 사람 다운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 첫째는 인생 최대의 고비를 맞았지만 잘 적응해내고 있다. 우선 엄마가 동생을 낳으러 갔을 때 16일간의 생이별을 극복해냈다. 엄마가 없어도 세상이 무너지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물론 요즘에도 틈만 나면 엄마를 많이 찾지만, 만약 엄마가 동생을 돌보고 있거나 다른 걸 해야 된다고 하면 군말 없이 이해해준다.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갑자기 등장한 새 가족인 동생과도 점점 애착형성을 하는 중이다. 동생이 울면 엄마 아빠보다 먼저 가보기도 하고, 차에서도 옆자리에 엄마가 아니라 카시트에 탄 동생이 있는 것도 즐길 수 있게 됐다.


우리 부부도 꽤나 험난한 적응기를 거치고 있다. 물론 우리는 애가 아니니까 이미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꽤나 굵직한 변화에 적응해본 경험은 있었다. 미성년자에서 성인이 될 때 그랬고, 당연스럽게 '미혼' 란에 체크하던 항목을 '기혼'에 V자를 그리는 것에도 이제 꽤 익숙해졌다. 첫째가 태어나면서 새로운 생명과 한 사람의 인생이 시작되고 자라나는 것을 함께하고 있다. 1인 가구로 살다가 2인 가구가 되고 또 3인 가구가 됐다.


그런데 이미 육아 경험이 있는 것과는 별개로 아이가 둘이 되는 건 생각보다도 꽤 큰 적응력이 필요하다. 한창 뛰어놀 다섯 살 아이와, 누워있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못 하고 아예 거의 집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2개월 아기를 동시에 만족시키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첫째 때는 아내 혼자 육아휴직을 하고 장모님이 많은 도움을 주셨지만 이번에는 둘이 같이 휴직을 해서 모든 걸 우리끼리 직접 해내야 한다.


오늘 하루를 돌아본다면 그래도 비교적 우리 부부의 적응력에는 꽤 높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둘째의 새벽 수유는 둘 중에 먼저 울음소리를 듣고 깬 사람이 좀비처럼 스르르 일어나 분유를 탄다. 둘째의 새벽 수유가 한 번으로 줄어든 덕분에 비교적 긴 잠을 잘 수 있게 되면서 그럭저럭 수월해졌다. 새벽에 분유를 먹이지 않은 나머지 한 명은 자연스레 첫째의 등원 담당이 된다. 예전에는 아무리 서둘러 준비를 해도 9시에 뛰어가서 겨우 버스에 탔는데 요즘은 비교적 여유롭게 10분 전에는 나갈 수 있게 됐다. 첫째가 취침 시간이 저녁 9시~10시 사이로 안정되면서 아침에 늦잠을 자거나 준비 시간에 떼를 쓰는 일이 없어진 덕분이다.


이렇게 등원까지 잘 되면 그 뒤론 한결 수월하다. 나는 주 4일은 오전에 수영장에 갔다 온다. 급체를 해서 앓아누운 날을 빼고는 지금까지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그 외에도 한 명이 둘째를 집에서 보는 시간에는 다른 한 명은 친구를 만난다거나 병원, 도서관, 은행, 마트 등 다른 스케줄도 소화 가능하다. 그리고 최근에는 조심스레 둘째를 데리고 외출도 해보고 있다. 오늘은 드라이브도 할 겸 남양주에 있는 카페에 다녀왔다. 둘째가 카시트와 차를 잘 타고 있는 편이고 유모차에도 잘 있고 대체로 밖에서도 조용한 순한 아가라 가능한 일이다.


저녁에도 한 명이 하원을 하러 나가면 다른 한 명은 저녁 식사 준비를 한다. 매일 정해진 당번이 없이 상황에 따라 바뀌다 보니 상대방이 하는 것도 다 나름대로 힘든 일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비교하고 따질 필요가 없어졌다. 씻기고 놀아주고 재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애가 둘이니까 한 명씩 맡아서 할 수밖에 없다. 주로 밤에는 내가 둘째를 재우고 아내가 첫째를 재우고 있다.


여기까지 루틴이 잡히고 적응이 되니까 이제 한결 여유도 생겼다. 보통 밤 10시 전에 애들이 다 잠에 드니까 부부끼리 영화나 드라마나 예능프로그램도 보고 술도 한 잔 할 수 있게 됐다. 와인 한 잔도 엄두도 못 내다가 50일째 되어서야 겨우 조심스레 건배를 했었는데 불과 한 달 여만에 이 정도로 편해졌다. 브런치에 쓰는 일기도 힘들어서 서로 하루씩만 쓰는 격일제로 바꿨었는데 오늘부로 다시 둘 다 쓰기로 했다.


보통 무언가에 적응하는 데는 100일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같이 휴직한 지 84일째다. 앞으로 약 2주 후면 휴직 100일째, 4주 후면 둘째가 태어난 지 100일째가 된다. 다들 여기까지 적응하느라 참으로 수고 많았다. 앞으로 한 달만 버티면 이제 당분간은 적응력이 좀 덜 필요해질 것 같으니 조금만 더 힘내자!

작가의 이전글 우린 답을 찾을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