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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Sep 16. 2022

우리 아가, 순둥이 예쁜이 귀염둥이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84일째

9월 15일(목) 선선한 가을


아기를 기르며 나도 모르게 뮤지컬 배우가 되는 순간이 있다. 아이에게 읊조리는 말에 리듬을 붙이는 것이다. 요새 매일 둘째에게 불러주는 노래가 그것이다.


"우리 아가, 순둥이~ 예쁜이~ 귀염둥이~"


이것은 노동요인가, 동요인가, 아니면 주입식 교육인가. 순둥이, 예쁜이, 귀염둥이가 되었음 하는 마음으로 대충 흥얼거리던 이 노래는 이제 우리 첫째까지 따라 부를 만큼 우리 집 애창곡이 되었다.


오늘은 날씨도 비교적 화창한 듯하고, 우리 밑에 밑에 집의 집 공사 소리로 둘째가 잠에 들지 못하길래 낮잠도 재울 겸 드라이브를 나가기로 했다. 점심을 후딱 해치우고 급히 나갈 준비를 했다. 첫째가 하원하는 시간은 오후 4시 30분. 안전하게 4시까지 집에 도착하기로 하고 목적지를 정했다.


목적지는 남양주 쪽 카페다. 우리 집은 남양주시와 가까운 서울 동쪽에 위치해 있다. 집에서 차로 10분만 나가면 금방 경치 좋은 카페가 많은 경기도 구리시와 남양주시다. 오늘도 차로 30분 만에 고즈넉한 자연 속에 위치한 카페 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 순둥이는 출발할 때쯤 잠들어 도착해 유모차에 옮겨 태우자 곧바로 깼다. 깨지 않고 더 자주면 좋으련만. 하긴, 뒷좌석에서 혼자 잘 자준 것만 해도 대견하다. 뒷좌석엔 첫째와 둘째의 카시트 두 대가 설치돼 그 사이에 나까지 앉기에 비좁다. 그러다 보니 아기를 혼자 카시트에 태우고 난 조수석에 앉고 있다. 첫째를 키울 땐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커피를 마시며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우리 순둥이 표정이 좋지 않다. 졸려서 그런 듯 싶어 쪽쪽이도 물리고 안아도 주었지만 표정이 어둡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정말 찌푸린 듯 기분이 나쁜 듯 어두운 표정이다. 그렇다고 울지도 않는다.)


왜 그럴까? 의아해하던 차에 남편이 둘째 궁둥이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더니 말한다.


"얘, 응가했는데?" 

"뭐라고?"


헐... 응가라니. 우리 순둥이 예쁜이 귀염둥이가 응가를 했다. 응가를 했는데 울지 않다니. 역시나 첫째 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역시 내 노랫말처럼 우리 둘째는 순둥인가 보다.


하지만 이 카페는 스타필드가 아니다. 당연히 기저귀 갈이대나 유아 휴게실은 없다. 남편이 차에 가서 혼자 기저귀를 갈고 오겠다고 선언했다. 난 혼자 하기 힘들 테니 같이 가겠다고 했지만 남편은 혼자 하겠다며 위풍당당하게 기저귀 가방과 둘째를 안고 들고 차에 다녀왔다. 그 뒷모습이 어찌나 듬직하던지. 결혼한 뒤론 애 잘 보는 남자가 멋있어 보인다. 우리 남편이 바로 그런 남자다.


기저귀를 간 뒤 산뜻해진 둘째는 다시 잠에 들었다. 우리는 첫째 하원 시간이 되기 전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잠깐 동안의 나들이지만 우리 둘째의 순둥한 면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을 쐬니 육아 스트레스도 풀리고 리프레쉬도 되었다.


아울러 우리 남편의 존재감도 다시금 느꼈다.

웃겨서 소리 내 부르진 못하겠지만 마음으로 둘째의 노래를 개사해 불러본다.


"우리 남편, 듬직이~ 자상이~ 멋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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