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가, 순둥이 예쁜이 귀염둥이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84일째

by 디내누

9월 15일(목) 선선한 가을


아기를 기르며 나도 모르게 뮤지컬 배우가 되는 순간이 있다. 아이에게 읊조리는 말에 리듬을 붙이는 것이다. 요새 매일 둘째에게 불러주는 노래가 그것이다.


"우리 아가, 순둥이~ 예쁜이~ 귀염둥이~"


이것은 노동요인가, 동요인가, 아니면 주입식 교육인가. 순둥이, 예쁜이, 귀염둥이가 되었음 하는 마음으로 대충 흥얼거리던 이 노래는 이제 우리 첫째까지 따라 부를 만큼 우리 집 애창곡이 되었다.


오늘은 날씨도 비교적 화창한 듯하고, 우리 밑에 밑에 집의 집 공사 소리로 둘째가 잠에 들지 못하길래 낮잠도 재울 겸 드라이브를 나가기로 했다. 점심을 후딱 해치우고 급히 나갈 준비를 했다. 첫째가 하원하는 시간은 오후 4시 30분. 안전하게 4시까지 집에 도착하기로 하고 목적지를 정했다.


목적지는 남양주 쪽 카페다. 우리 집은 남양주시와 가까운 서울 동쪽에 위치해 있다. 집에서 차로 10분만 나가면 금방 경치 좋은 카페가 많은 경기도 구리시와 남양주시다. 오늘도 차로 30분 만에 고즈넉한 자연 속에 위치한 카페 한 곳에 도착할 수 있었다.


우리 순둥이는 출발할 때쯤 잠들어 도착해 유모차에 옮겨 태우자 곧바로 깼다. 깨지 않고 더 자주면 좋으련만. 하긴, 뒷좌석에서 혼자 잘 자준 것만 해도 대견하다. 뒷좌석엔 첫째와 둘째의 카시트 두 대가 설치돼 그 사이에 나까지 앉기에 비좁다. 그러다 보니 아기를 혼자 카시트에 태우고 난 조수석에 앉고 있다. 첫째를 키울 땐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커피를 마시며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우리 순둥이 표정이 좋지 않다. 졸려서 그런 듯 싶어 쪽쪽이도 물리고 안아도 주었지만 표정이 어둡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정말 찌푸린 듯 기분이 나쁜 듯 어두운 표정이다. 그렇다고 울지도 않는다.)


왜 그럴까? 의아해하던 차에 남편이 둘째 궁둥이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더니 말한다.


"얘, 응가했는데?"

"뭐라고?"


헐... 응가라니. 우리 순둥이 예쁜이 귀염둥이가 응가를 했다. 응가를 했는데 울지 않다니. 역시나 첫째 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다. 역시 내 노랫말처럼 우리 둘째는 순둥인가 보다.


하지만 이 카페는 스타필드가 아니다. 당연히 기저귀 갈이대나 유아 휴게실은 없다. 남편이 차에 가서 혼자 기저귀를 갈고 오겠다고 선언했다. 난 혼자 하기 힘들 테니 같이 가겠다고 했지만 남편은 혼자 하겠다며 위풍당당하게 기저귀 가방과 둘째를 안고 들고 차에 다녀왔다. 그 뒷모습이 어찌나 듬직하던지. 결혼한 뒤론 애 잘 보는 남자가 멋있어 보인다. 우리 남편이 바로 그런 남자다.


기저귀를 간 뒤 산뜻해진 둘째는 다시 잠에 들었다. 우리는 첫째 하원 시간이 되기 전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잠깐 동안의 나들이지만 우리 둘째의 순둥한 면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바람을 쐬니 육아 스트레스도 풀리고 리프레쉬도 되었다.


아울러 우리 남편의 존재감도 다시금 느꼈다.

웃겨서 소리 내 부르진 못하겠지만 마음으로 둘째의 노래를 개사해 불러본다.


"우리 남편, 듬직이~ 자상이~ 멋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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