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87일째
9월 18일(일) 가을더위
오늘은 조카의 생일날이다. 나에겐 조카가 두 명 있다. 한 명은 중학생, 한 명은 초등학교 6학년이다. 중학생 된 조카가 오늘 생일이었다. 내 20대때 태어나 고모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첫조카. 그땐 조카바보였지만, 커 가며 데면데면 하게 된다. 그래도 오늘 조카의 생일을 축하해주러 친정에 갔다.
이렇게 가족들이 모이면 모두의 관심은 둘째에게로 쏠린다. 오늘도 통잠을 잤다며 둘째를 기특해하는 외할머니, 아가가 좋아 어쩔줄 모르는 올케언니와 조카들, 늘 무덤덤하고 과묵한 우리 오빠조차 아가 주변을 맴돈다. 반면 둘째가 태어난뒤 친정에 가면 우리 첫째는 늘 찬밥이다. 뭘 해도 잔소리만 듣고 모두들 좀처럼 첫째에게 관심을 주지 않는다.
그럴 때 첫째의 기분을 살펴보는 건 내가 유일하다. 첫째가 대놓고 싫은 내색을 하거나 위축되진 않는다. 그저 사람들 하는 말에 귀를 쫑긋하며 눈을 땡그랗게 뜨고 이 사람 저사람 말을 듣는 것 뿐이다. 그러다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주고 있지 않는단 사실을 깨달으면 춤을 추거나 뛰는 천방지축 행동을 시작하는 것이다.
생일 파티가 끝나고 모두가 집에 간 뒤, 친정에서 나와 첫째만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와 있을 때에도 여전히 둘째 얘기로 싱글벙글하다. 내가 듣기에도 거북할 정도로 둘째 칭찬 일색이라 나중에 첫째 안들리게 친정엄마에게 "oo이 칭찬좀 해줘요"하고 말했다.
그런면에서 우리 가족들은 좀 둔감한 편이다. 시부모님은 좀 더 예민하게 첫째 기분을 살피고 첫째와 놀아주려 한다. 그러나 둘째가 태어난 뒤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외갓집에서 첫째가 오늘 정도로 잘 놀고 큰 말썽을 피우지 않은 걸 나는 기특하게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주연에서 조연이 된 우리 첫째. 그래도 동생을 늘 예뻐하고 '우리 가족'이 몇 명이냐 물으면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숙모, 사촌형, 사촌누나까지 모두 모두 12명이라고 말한다. 아빠까지 딸바보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엄마가 있으니 괜찮다. 엄마는 끝까지 네 편이야! 너를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