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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Sep 19. 2022

아이들만의 세계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88일째

9월 19일 월요일 맑음


"유치원에 안 가고 싶어"


오늘 등원 시간에 첫째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둘째가 무려 어젯밤 10시부터 오늘 아침 8시까지 10시간의 통잠을 자서 마냥 기쁜 마음으로 아침을 먹던 아내와 나는 굉장히 당황했다. 첫째는 유치원을 굉장히 좋아하고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가기 싫다고 한 적이 없었다.


가기 싫어도 유치원은 가야 된다고 하니까 별로 군말 없이 등원을 하긴 했다. 등원시키고 온 아내에게 들어보니 유치원을 가기 싫다고 한 건 식사시간 때문이었다. 점심시간에 선생님들이 자꾸만 한 입만 먹어보라고 하는 게 싫어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간혹 TV에 나오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의 아동학대 뉴스도 대개 밥을 먹이다가 체벌을 가하는 경우가 많은 걸 보면 확실히 애들에게 밥 먹이는 게 꽤나 어려운 일인 듯하다.


어쨌건 별로 심각한 이유는 아니어서 아내와 나도 안심을 했다. 사실 지금까지 6개월 정도 다니면서 아무리 아침에 기분이 안 좋은 상태로 등원을 했어도 하원할 때는 매번 한껏 기분이 좋아져서 들뜬 상태로 돌아오곤 했기 때문에 유치원 걱정은 별로 하지 않게 됐다. 등원을 시키고는 수영이랑 근골격 운동센터도 가고 둘째를 데리고 어린이대공원 나들이도 하면서 알찬 시간을 보냈다. 이러다 보면 늘 눈 깜짝할 새에 하원 시간이 된다.


하원 버스에서 내린 첫째는 아침에 유치원 가기 싫다고  애는 온데간데없고 친구들과 킥보드를 타고 놀이터로 쏜살같이 달려가기 바빴다. 햇볕이 따뜻하고 바람은 시원하니 놀기  좋은 가을 날씨여서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평소보다 훨씬 많았다. 같은 유치원 친구들만 거의 10 가까이 됐다. 첫째보다 어린 동생들도 있고  아이들의 보호자 최소  명씩은 있으니 놀이터는 정신없이 북적거렸다.


"어른은 여기 들어오면 안 되는데요~"


내가 놀이터 가운데에 있는 구조물로 올라가려고 하자 아이들이 막아 세우며 말한다. 아이들은 그곳을 유치원이라고 상황 설정을 해놓고 '유치원 놀이'를 하고 있었다. 계단에 신발도 벗어놓고 다들 양말만 신고 유치원처럼 수업도 하고 배식도 하고 상황극에 심취해 있다. 번갈아가며 선생님 역할도 하고 다들 장단이 잘 맞는다.


그러고 보면 불과 1년 전만 해도 첫째의 친구는 어린이집에 같이 다니는 2~3명이 다였다. 놀이터에 가도 거의 엄마 아빠가 옆에서 놀아줘야만 했었다. 그나마도 3살 정도까지는 어린이집에 같이 다니는 애들과도 그냥 '어린이집에서 옆에 있는 애'일뿐 친구는 아니었다. 친구랑 같이 논다는 것도 4살쯤은 되어야 할 수 있는 일종의 발달 과정이다. 그러고 보면 첫째가 어린이집을 다닐 때 아내와 "언제쯤이면 얘가 친구랑 규칙과 상황을 정해서 놀 수 있게 될까?"하고 궁금해했던 적도 있었는데, 어느새 벌써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아이들의 세계는 나와 가까이에 있다. 5 아이들은 보호자가   있는 곳에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보호자가 따라다니지 않는 나이가 된다. 이제 불과 1~2 뒤에는 누구랑 어디서 놀았는지 집에 들어와서 물어봐야만   있는 날이  것이다. 어쨌든 우리 첫째가 부모도 다른 보호자도 선생님도 옆에서 밀착마크를   없는 '아이들만의 세계' 완전히 들어가서도  해낼  있도록 최대한  아이에게 건강한 몸과 마음을 만들어 줘야겠다.


그리고 지금 놀이터에서 나의 2022년 가을을 함께 보내고 있는 첫째 친구들과 그 보호자들과의 시간은 어쩌면 나중에 떠올렸을 때 내 인생에서도 추억 한 페이지로 남아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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