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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Sep 19. 2022

엄마는 날씨의 노예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88일째

9월 19일(월) 살랑살랑 가을 날씨  


내가 좋아하는 가을이다. 나는 우리나라 사계절 중 봄과 가을을 좋아한다. 다른 사람들도 비슷할 것 같다. 특히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더 그렇다. 아이들과 부담 없이 바깥놀이를 할 수 있는 봄과 가을이 좋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봄과 가을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 순식간에 지나가버리는 봄과 가을을 붙잡아야 한다. 그렇게 나는 날씨의 노예가 되었다.  


우리 첫째의 생일은 6월 23일이다. 둘째는 7월 5일에 태어났다. 둘 다 여름 아이다. 경험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여름에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고생스러운 일이다. 체감온도가 높아지는 만삭 때 찌는 듯한 더위를 견뎌야 한다. 아이를 낳은 뒤 에어컨 켤 때마다 산후풍 걱정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에어컨을 포기할 순 없다. 잠시만 에어컨을 꺼도 금방 아이들 땀띠가 생긴다. 가뜩이나 더운데 수유나 오로 등 출산 후유증으로 불쾌지수가 더 높아진다.  


그렇게 고생스러운 여름을 신생아인 아이와 견뎌낸 뒤엔 선물 같은 가을이 온다. 첫째 때도 그랬지만 둘째 때도 아이 60~70 무렵부터 바깥나들이하기 좋은 날씨가 됐다. 꼼짝달싹 못하던 신생아 시기도 지났겠다 이제는 아이와 잠깐이나마 외출할  있다. 특히 부부가 같이 육아휴직을 하고 있는 지금, 첫째를 유치원에 보내고 나면 우리들의 자유시간이 허락된다.  


오늘은 집 근처 어린이대공원에 다녀왔다. 오후 온도가 27도 정도로 생각보다 더웠지만 유모차 끌고 산책 다니기에 나쁘지 않았다. 우린 첫째 때 쓰던 앞보기만 되는 유모차를 쓰고 있다. 첫째 때도 디럭스는 굳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여 무턱대고 뒤보기(보호자와 마주 보기)가 안 되는 절충형을 덜컥 샀었다. 막상 아이를 낳고 나니 6개월까진 뒤보기가 편하다는 데 공감되지만 그렇다고 다시 유모차를 마련하는 건 낭비인 것 같아 그냥 이대로 쓰고 있다. 그렇게 우리 둘째도 첫나들이는 엄마, 아빠가 아닌 세상을 보며 시작하게 됐다.

 

앞보기로 70일 갓 넘은 아이를 태워 돌아다니니 사람들이 많이들 쳐다본다. 특히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귀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관심을 보여주신다. 한번 아이를 키워보면 백일 전후의 아가들이 정말 정말 귀여워진다. 나도 첫째가 세네 살 이후로 커져버린 뒤 갓난아기만 보면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왔다. 오늘도 너무 예쁘다며 지나가는 행인분들과 인사를 나눌 만큼 갓난아기라는 존재는 사람들을 무장해제시키는 마력이 있다. (예뻐하는 건 좋지만 제발 만지진 않으셨으면 좋겠다...^^)  


나가보니 평일 낮에 어린이 대공원에 놀러 오는 가족들이 꽤 많았다. 대부분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엄마들이었고 아빠가 동행한 가족들도 종종 있었다. 지금 어린이대공원의 많은 곳들이 공사 중이었지만 가벼운 산책을 하기에 적당했다. 재주를 부리는 곰도 볼 수 있었고, 시원하게 분수 쇼도 하고 있었다. 비록 둘째는 유모차에서 거의 잠만 자고 있었지만 내가 더 신났던 것 같다. 사람이 많지 않아 보기에도 더 편했다.  


그렇게 한두 시간의 나들이를 마치고 서둘러 집으로 왔다. 날씨의 노예는 날씨가 좋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나가야 한다. 고로 당분간은 매일매일 짧지만 소중한 외출을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주의할 점은 한창 날씨가 좋을 때 아프면 안 된다는 것이다. 나는 날씨의 노예라 날씨가 좋은데 밖에 나가지 못하면 성질이 나고 한없이 우울해지는 부작용을 앓고 있다. 이대로 쭉 우리 둘째가 날씨의 노예 엄마에 발맞춰 날씨의 요정까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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