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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Sep 21. 2022

개미가 타고 있어요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90일째

9월 21일 수요일 산책하기 딱 좋은 날씨


요즘 아내와 나는 둘째를 데리고 외출하는 재미가 들렸다. 둘째의 수유 패턴이 낮에는 4시간, 밤에는 8시간 이상으로 굉장히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우리 효녀 둘째가 차도 잘 타고 유모차도 잘 타는 순한 아기라서 가능한 일이다. 이번 주는 월요일에 어린이 대공원, 어제는 하남 스타필드, 오늘은 올림픽공원에 다녀왔다.


그리고 얼마 전부터 아내와 같이 정주행 하는 콘텐츠가 생겼는데 티빙 오리지널인 <개미가 타고 있어요>라는 드라마다. 주식 투자가 주요 소재이긴 하지만 12부작에다 에피소드 하나에 30~40분 정도 분량으로 가볍게 볼 수 있는 시트콤 같은 느낌이라 아내도 큰 거부감 없이 같이 보기 시작했다. 실은 이 드라마를 보자고 하면서 나는 숨은 의도가 있었는데, 아내에게 자연스럽게 주식 투자의 기본 개념을 이해시키고 이게 무슨 도박이나 허황된 로또 같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드라마는 예상보다도 훨씬 내 의도에 최적화된 내용이었고 심지어 매 에피소드 끝날 때마다 에필로그로 '슈카'가 그 회차에 나온 주식이나 투자에 관한 상식과 개념들을 알기 쉽게 설명까지 해준다. 누가 기획한 건지 정말 감사 편지라도 보내고 싶다.


왜냐하면 사실 주식 투자는 원래 우리 부부의 성향이 정말 맞지 않는 분야였다. 나는 금융업계 관련된 일을 하기도 했고 펀드 관련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어서 예전부터 아주 공격적인 투자 성향을 갖고 있었다. 반면에 아내는 소극적인 정도를 넘어서 가능하면 아무것도 투자하지 않는 것을 선호하는 타입이었다. 문제는 실제 결혼 이후에 우리가 했던 투자 중에서 내가 주도적으로 했던 주식 투자는 결과가 그닥 좋지 않았기 때문에 아내의 투자 성향은 오히려 방어적이 되어갔다. 그 와중에도 나는 여러 경제 관련 기사나 금융 전문가들의 유튜브 영상 등을 아내에게 자주 공유하면서 변화를 꾀했지만 쉽지 않았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정말 효과 만점이다. 일단 드라마 내용이 너무 어려운 투자 얘기만 나오거나, 무슨 주인공이 투자 대박으로 인생 역전하는 드라마였다면 아내 입장에선 노잼이었을 것이다. 근데 이 드라마 장르는 기본적으로 멜로다. 멜로가 체질인 아내는 내가 보자고 하지 않아도 알아서 이 드라마를 나와 같이 정주행 하게 되었고, 순전히 드라마 때문인지는 몰라도 주식 시장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심지어 오늘은 내가 예전부터 추천했던 종목을 자발적으로 사서 나에게 자랑을 하기까지 했다! 7년간의 설득과 설명과 온갖 정보 제공으로도 신통치 않던 것이 드라마 하나 같이 본다고 이렇게 바뀌다니 정말 신기한 일이다. 이걸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결국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건 강한 바람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라는 사실이다.


이렇게 7년 만에 아내의 투자 성향을 한 칸 정도는 바꾸는 데 성공한 상황이지만 문제는 주식 시장이 지금 엉망진창이라는 것이다. 지금 잠깐 그런 게 아니라 코스피고 나스닥이고 역대급 하락장이 일 년 가까이 계속되면서 내 주식 계좌도 내리막길로만 굴러가고 있다. 그리고 오늘은 앞으로의 향방을 가늠할 9월 FOMC 결과가 나오는 날이다. 아 제발 이제 앵간히 했으니 좀 올라갑시다. 개미가 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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