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89일째
9월 20일 화요일 낮은 구름과 선선한 바람
수영을 시작한 지 어느덧 6주 차가 되었다. 나는 어릴 때 수영을 조금 다녔었지만 기억도 안 나고 몸도 안 따라줘서 처음부터 배우고 있다. 처음에는 음-파 호흡과 자유형 발차기로 시작했지만 꾸준히 나가면서 지금은 자유형과 배영까지 어느 정도 기본기는 터득한 상태다.
사실 나는 어릴 때 배운 적이 있는 사람이기도 하고, 현재 내 시간대의 초급반에서는 유일한 남자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남들보다 더 빠르게 잘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 빨리 가려고 해도 힘만 들뿐이었고, 솔직히 나보다도 늦게 시작한 사람들 보다도 내가 더 잘하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지난주쯤에는 한 달이 넘었는데도 좀처럼 늘지 않는 느낌이 들어 꽤나 실망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냥 하루하루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것에만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제까지는 자유형을 할 때 물을 너무 많이 먹었다. 그래서 가다가 중간에 멈추는 경우가 많았고, 그런데 힘은 힘대로 들어서 끝나고 나면 어깨랑 목이 너무 아팠다. 그런데 오늘은 그냥 강사의 조언을 잘 생각하면서 문제가 있는 동작 하나하나만이라도 고치는 데 집중을 했더니 확실히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 팔을 쭉 피되 손 끝에는 힘을 빼고 자연스럽게 빨리 돌리는 것에 집중하니까 몸이 덜 가라앉았다. 숨을 쉴 때 엉덩이를 돌려서 몸을 옆으로 많이 틀어주니까 숨을 쉴 때 물을 먹지 않게 됐다. 물론 처음부터 한 번에 다 고친 게 아니라 하나씩 해보다 보니까 끝날 때쯤에서야 겨우 이렇게 나아진 것이 느껴질 정도가 된 것이다. 끝나고 나니 목도 덜 아픈 것 같았다.
어쨌든 적어도 수영에 있어서는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내가 한 걸음 나아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좋았다. 하긴 그래도 6주 동안 나는 수업에 한 번밖에 빠지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을 보면 주 4회 중에 한두 번 빠지는 건 비일비재하고, 심지어 처음에 한두 번 나오고 안 오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일단 적어도 포기하지 않았고 꾸준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그리고 수영 그 자체만으로 봐도 어느덧 이제 판때기를 잡지 않고 자유형과 배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 달만에 접영까지 마스터하는 능력자는 아닐지라도 조금씩, 그러나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
나보다 훨씬 무한한 가능성을 타고난 우리 아이들의 경우는 어떨까. 일단 아직 생존 그 자체를 배우는 갓난아기인 둘째는 차치하고, 첫째의 경우는 스펀지처럼 모든 것들을 빨아들이는 중이다. 근데 하고 싶은 건 많은데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우선 유치원을 매일 다니면서 특별활동도 하루에 2타임을 한다. 그리고는 놀이터에서 1시간 이상 놀아야 하고, 집에서도 '잉글리시 에그' 영어 교재 듣고 보기,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보기, 자기 전에 책 읽기 등등 할 게 많다. 여기에다 금요일에는 수영도 배우러 다니고 요 며칠은 '윙크'라는 가정용 스마트 학습 기기를 체험하고 있다. 근데 얘는 이것들을 다 너무 좋아한다.
오늘 아내와도 긴 시간 상의했지만, 이것저것 다 잘하고 학습 욕구가 많다고 해도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다. 아이가 정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게 부모의 역할이다. 실은 오늘 놀이터에서 다른 5세 아이들 부모님에게 슬쩍 유치원 말고 다른 걸 배우거나 다니는지 물어보고 다녔다. 놀랍게도 이렇게 여러 가지를 하고 있는 애는 아무도 없었다. 물론 남들과 비교해서 무조건 똑같이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다른 친구들보다 무리해서 두 세 걸음씩 뛰어오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우리 가족 모두 마찬가지로 너무 손 끝까지 힘을 바짝 주고 더 빨리 가려고 하지 말자. 그러면 더 금방 지치고 가라앉을 뿐이다. 그리고 첫째에게는 이번 기회에 하고 싶은 것들에 적절하게 시간을 배분하는 법을 알려주어야겠다. 원래 그릴 것은 너무 많은데 하얀 종이는 너무 작은 법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