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내누 Sep 24. 2022

니 오늘 와그라노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92일째

9월 23일(금) 바람이 분다


육아를 하다 보면 그런 날이 있다. 아이보단 내가 감당 안 되는 날이. 오늘이 바로 그런 날이었다. 자꾸 화가 나는데 처음엔 아이 때문에 화를 내지만 점점 화를 내는 나 자신을 주체 못 해 화를 계속 내게 되는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면 좋겠다. 이런 못난 엄마가 나만 있는 건 아니겠지? 어떨 땐 엄마들 앞에서 엄청 좋은 엄마인 것처럼 굴고, 여러 권의 육아서를 빌려보기도 한다. 그럼 뭐하나. 내 감정 하나 컨트롤 못하는데.


오늘 아침엔 첫째가 늦잠을 잤다. 그 전날도 늦잠을 자서 지각했었다. 다시 늦잠을 안 자기 위해 10시 전에 재우려 노력했지만 겨우 10시쯤에 잠에 들었었다. 다른 애들은 8시에도 잔다는데 우리 애는 낮잠을 안 자는데도 10시에도 쌩쌩하다. 후... 다른 애들과 비교 안 하고 싶은데 잠자는 것과 먹는 것에 있어서만큼은 다른 애들과 자꾸 비교를 하게 된다.


암튼 늦잠을 잤는데도 꾸물거리며 아침을 먹길래, 거기에 엄마에게 별 것 아닌 일로 억지를 부리며 짜증까지 내길래 호되게 혼내고 아이를 서둘러 준비시켜 등원을 시켰다. 등원 길에도 아이에게 신경질을 냈다. 아이는 등원 길에 주루룩 주차된 자동차를 보면서 가는 걸 좋아한다. 그치만 난 늦었는데 그렇게 여유롭게 노래를 부르거나 차 번호판을 읽으며 가는 아이가 보기 싫었다.


솔직히 그때만큼은 내 자식이지만 꼴 보기가 싫었던 것 같다. 대뜸 화를 내니 아이가 평소와 다른 나를 멀뚱하게 쳐다본다. '엄마 오늘 왜 그래?' 이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사실 이 화는 '화풀이'는 아니다. 오늘 하루 종일 화낼 일은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묵은 짐 같은 것이다. 그동안은 남편에게 악역을 많이 맡겨왔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다. 내가 남편보다 더 수용적인 엄마라서 그렇다. 하지만 엄한 아빠와 수용적인 엄마의 조합이 아이 교육 상 그닥 좋을 것 같진 않아 바뀌고 싶었다.


그렇다고 그게 아이에게 화를 내도 된다는 건 아니다. 순한 엄마와 엄한 엄마로 on/off만 있는 것처럼 나는 '단호한 엄마'가 참 잘 안 되는 것 같다. 저녁에도 내내 왠지 첫째를 대하는 내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상냥한 말투와 미소가 지어지지 않았다. 아니.. 단호한 엄마가 나쁜 엄마나 사랑해주지 않는 엄마는 아닌데 왜 그러나... 스스로 답답했다. 과연 나는 단호하지만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오늘따라 육아에 자신이 없다. 빨리 오늘이 지나고 새로운 내일의 좋은 엄마인 나로 돌아오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좀 내버려두어도 괜찮아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