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내누 Sep 22. 2022

좀 내버려두어도 괜찮아요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91일째 

9월 22일(목) 점점 쌀쌀해지는 가을 날씨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일기를 못썼다. 동네의 큰 공원으로 둘째와 산책을 나갔었고, 집에 돌아와선 첫째 하원을 담당했었다. 오랜만에 엄마가 하원을 나와서인지 아이가 많이 좋아했다. 내일도 또 엄마가 나오면 좋겠다는 당부에 오늘도 내가 하원을 맡았다.  


아이는 버스에서부터 날 보며 좋아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뿌듯하기도 했다. 하지만 놀이터에선 너무 내 곁을 맴돌았고 아이들과 노는 것보단 나와 이야기를 하거나 간식을 더 사러가자는 등 요구하는 게 많아져서 피곤했다. 남편이 나갔을 때완 다른 양상이다. (남편이 나가면 애가 그냥 알아서 친구들과 잘 논다고 한다. 아마 남편이 나보다 더 방관적인 스타일이라 그럴 것이다)  


좌우지간 나는 이 놀이터를 '사교의 장'이라 부른다. 이 곳에서 아이는 아이들이 같은 유치원의 같은 반 친구, 다른 반 친구, 다른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다니는 친구들, 좀 더 어린 어린이집 동생들, 가끔은 초등학교를 다니는 형과 누나와도 논다. 결국 놀이터는 많은 아이들이 서로 사귀는 동시에 많은 양육자들의 육아관이 서로 충돌하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많이 놀이터를 관찰해본 결과 모든 아이들이 다 업앤다운이 있다. 어떤 날엔 굉장히 신나게 잘 놀거나, 나와 놀아주는 친구가 없다고 울적해하는 양상들이 가끔 반복된다. 굉장히 잘 노는 경우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문제는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럴 땐 사실 옆에 있어주는 것 외에 엄마가 도와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반면 굉장히 주도적으로 내 아이를 무리에 끼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보호자들도 있다.  


놀이터라는 시설물을 이용하는 방식에서도 보호자들의 여러가지 다른 양육관들이 뒤섞인다. 내 생각에 원형 미끄럼틀의 슬라이드 통 위에 기어올라가 본다던가, 그네를 꽈배기로 돌려서 빙빙 돌아보는 경험은 보호자가 지켜보는 범위에서, 그리고 다른 아이들과 신체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선에서는 시도할 법 하지만 시작조차 하지 말라며 위험하다고 통제하는 보호자도 있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신이 나서 아이들이 큰 함성을 지르며 신나하면 시끄럽다고 조용히 말하라고 하는 엄마도 보았다. 야외 놀이터인데 말이다.   


놀이터에선 여러 보호자의 다양한 육아관이 뒤엉켜 꼭 내 방식만을 고집할 순 없을 때도 있다. 하지만 놀이터에서조차 어떠한 작은 도전이나 성취, 정서적 외로움, 사소한 부당함과 속상함까지 보호자들이 바로잡고 모든 일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과연 아이들 교육에 좋을 지 모르겠다.  


최근 읽은 <세살 네살 넛지육아>라는 책이 있다. 아이를 보호할 필요가 있는 상황과 없는 상황을 정리해놨는데 그 결과가 매우 흥미로웠다.  


*아이를 보호할 필요가 없는 상황

- 혼자서 놀고 있거나 연습을 하고 있을 때

- 다른 아이들과 놀고 있을 때

- 다른 어른들과 교류하고 있을 때

- 뭔가에 대해 결정을 내렸을 때 (아무리 더 좋은 방법이 있더라도)

- 작은 충격이나 넘어짐과 같은 위험

- 할퀼 위험이나 놀랄만한 일

- 형제나 친구들과 가벼운 말싸움  


*아이를 보호해야 하는 상황

- 부상이나 사고의 위험이 있을 때

- 사망 사고의 위험이 있을 때

- 중독의 위험이 있을 때

- 다른 사람을 신체적으로 다치게 할 우려가 있을 때

- 지나치게 난폭한 짓을 할 때 


이 책을 읽은 뒤 나는 좀 더 내 방식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다고 나와 다른 보호자들의 양육관을 부정하진 않는다. 그들 방식을 존중하되 나는 이 방식이 맞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든 아이는 다 다르고, 각자가 아이를 기르는 방식도 내가 전혀 알 수 없는 또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단단하되 평하롭게,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내 아이를 기르고 싶다. 가끔은 속이 문드러져도 말이다.  

 

"조금 내버려두어도 괜찮아요. 아이들을 믿어보아요." 
작가의 이전글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