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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Sep 24. 2022

큰 행복, 작은 불행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93일째

9월 24일(토) 완벽한 가을 날씨  


<안나 까레리나>라는 책을 5년에 걸쳐 읽었었다. 20대에 읽기 시작해서 30대 때 다 읽었으니 말 다했다. 거기에 보면 아주 유명한 이런 구절이 나온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 


진짜 그렇다. 오늘 우리 가족은 큰 행복과 작은 불행들을 동시에 누렸다.  


크게는 행복했다. 환상적인 가을 날씨를 바라보며 한강공원에서 피크닉을 했다. 두 아이와 비타민D 합성을 맘껏 했고 집에 와 두 아이를 재우고 지금은 배달한 참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오늘 하루 종일 웬일인지 작은 불행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빵집에서 아이가 좋아할 거라 기대하고 샀던 올리브 식빵을 아이가 먹자마자 뱉어냈다. 현관문 고정장치가 고장 나 짐을 챙겨 밖에 나갈 때 굉장히 번거로웠다. 두 아이를 태우려고 집 앞에서 남편을 기다리는데 이상한 사람이 이상하게 차를 우리 바로 앞에 불법 주차하여 괜히 자리를 옮겼어야 했다. 아파트 후문을 나설 때 주차 가드가 고장 나서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해야 했다. 공원 주차장에서 둘째 쪽쪽이를 잃어버릴 뻔했다. 첫째가 둘째 쪽쪽이를 손으로 만져서 울고불고하는 둘째를 데리고 쪽쪽이 없이 집에 와야 했다. 첫째가 그 와중에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 손에 잔뜩 끈적한 아이스크림을 묻혔다. 큰맘 먹고 첫째가 먹고 싶다던 카레를 만들었는데 1시간 30분에 걸쳐 만든 카레가 망했다. 그 와중에 첫째는 카레가 다 완성되자마자 볶음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둘째가 저녁 내내 찡찡댔다. 남편이 먹어보지도 않고 내 카레의 몰골을 보고 이걸 어떻게 먹냐고 했다. 남편과 싸웠다.  


순간적으로 짜증이 확 치밀어 오르고 욱하는 순간들이 사실 많았다. 다행히 모든 순간 마음을 잘 다스렸다. 내가 1시간 30분 동안 만든 카레를 보고 남편이 "이게 뭐야. 왜 이렇게 됐어?"라고 하기 전까지 말이다. 물론 누가 보아도 '카레가 왜 이러지?' 싶을 만큼 내가 만든 카레가 이상하긴 했다. 난 사실 못 먹을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남편과 첫째가 내가 만든 요리를 먹어보지도 않고 안 먹고 싶어 해서 기분이 상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마구 화를 냈다.  


싸우는 중에 둘째가 배가 고프다고 울길래, 그깟 카레 남편이 버려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둘째 분유를 먹였다. 그런데 남편과 첫째가 밖에서 저녁을 먹고 있길래 뭘 먹나 싶었는데 내가 만든 카레였다. 남편이 신기하게도 심폐소생을 시켰다. 그렇게 우리는 카레 때문에 싸우고 카레를 먹으며 화해를 했다.  


오늘 우리는 작은 불행들을 잘 극복했고, 이제 큰 행복의 대망을 장식할 참치 야식을 기다리고 있다. 애썼다 정말. 앞으로도 작은 불행을 잘 이겨내고, 큰 행복을 지켜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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