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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Sep 25. 2022

어쩌다 각방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94일째

9월 25일 일요일 맑음


둘째가 태어난 뒤로 우리 부부는 안방을 빼앗겼다. 원래 우리는 안방에서 자고 첫째는 자기 방에서 자고 있었는데, 신생아는 태열과 체온조절 미숙으로 에어컨을 상시 풀가동해야 하다 보니 안방이 너무 추워서 거실로 나와서 자게 된 것이다. 이를 증명하듯 이번에 8월 관리비 청구서는 평소보다 전기요금이 훨씬 많이 나왔다.


어제도 분명 애들을 각자 자기 방과 안방에서 재우고 아내와 나는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 그런데 새벽에 둘째가 깨는 소리가 들려서 일어나 보니 어느새 아내는 첫째 방에서 자고 있었다. 원래 첫째는 자다가 깨면 깜깜한 방에 혼자 있는 게 무서워서 엄마를 찾곤 한다. 둘째는 이제 새벽 수유를 안 해도 되지만 새벽에 가끔 깨면 가서 문제를 해결해 줘야 한다. 나는 둘째한테 가서 쪽쪽이를 물려주고 불편한 자세를 바로잡아 주었다. 그리고 안방 침대에서 둘째와 가급적 멀찍이 떨어져서 자꾸 허우적대는 손을 잡아주다가 잠에 들었다.


실은 이렇게 2개월 된 아기와 같이 침대에서 자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 자다가 어른이 움직여서 애를 치거나 누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예전에 신혼 때 자다가 침대에서 떨어진 적도 있는 아내의 경우 둘째와 웬만하면 한 침대에서 같이 안 자는 것이 안전하다. 나는 그나마 잘 때 자세 거의 그대로 일어날 정도로 얌전하게 자는 편이긴 하지만 그래도 최대한 조심해서 둘째한테 멀리 떨어져서 손만 잡고 자는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잠결에 아침이 되고 보니 아내는 첫째 방에서, 나는 둘째와 안방에서 각방을 쓴 셈이 되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렇게 2대2 각방 케어 전략은 앞으로도 당분간은 유효할 듯싶다. 오늘 오후에는 담당을 바꿔서 내가 첫째와 근교에 있는 쇼핑몰로 나가고 아내는 둘째와 집을 지켰다. 실은 오전 내내 첫째와 둘째 모두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번갈아가며 계속 우는 통에 도저히 둘 다 한 집에서 보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첫째를 데리고 오후 2시쯤 나가서 거북이들이 있는 카페와 째깍섬 등을 이용하며 시간을 보냈고 저녁까지 해결하고 저녁 8시쯤 집에 복귀했다. 집에 오는 차에서 잠이 든 첫째를 들쳐 메고 위풍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오자 아내가 반갑게 문을 열어 맞이했다. 둘째도 그 사이 컨디션도 회복하고 오늘의 할 일을 모두 마친 상태였다. 잠든 첫째를 그대로 눕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도 재우고 나니 9시가 채 되지 않았다. 치킨을 뜯으며 영화를 한편 때려도 12시 전에 잘 수 있다!


생각해보면 만약 네 식구가 한 침대에서 잔다면 분명히 불편할 것이다. 아니 사실 좁고 덥고 한 명이 조금만 뒤척여도 신경이 쓰이니 제대로 잘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일상생활도 이와 같다. 넷이 계속 같이 있으면 그냥 당연히 더 힘든 것이다. 아무래도 앞으로도 당분간은 각방을 쓰는 게 전략적으로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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