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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Sep 25. 2022

지금 나 떨고 있니?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94일째

9월 25일(일) 맑음인 듯, 한 번도 밖에 나가지 않음


아이 둘을 기른 지도 100일이 다 되어간다. 지난 100일을 돌이켜보면 험난한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그래도 할만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게 다 남편과 나의 공동육아 노하우가 쌓여서 그렇다.


우리 가족의 경우 이러한 룰들이 있다.


1. 보통은 첫째를 엄마가, 둘째를 아빠가 담당한다. 엄마를 더 원하는 건 애들 대부분이 그렇다. 그러다 보니 아직 의사표현이 어려운 둘째를 아빠가 담당하게 된다. 우리 집만 이런 게 아니다.

2. 첫째가 유치원에 가지 않는 주말엔 4인 육아보다 2인 육아가 편하다. 어쩌다 반나절이라도 4인이 다 같이 있는 경우엔 1의 룰을 따른다. 다만 외출을 하는 경우엔 아빠가 운전이 가능하니 첫째도 아빠랑 잘 나간다. (엄마랑 나가면 뚜벅이라 힘들다는 걸 이용한다)

3. 집안일은 뒷전으로 미룬다. 연이은 배달음식, 설거지 몇 시간 쌓이는 것, 방바닥에 먼지가 굴러다니거나 빨래가 쌓여있는 것 등에 초월해야 한다. 굳이 집안일이랑 육아 동시에 하겠다고 욕심부리다 멘탈 털린다. (어제 저녁에 내가 요리에 욕심만 안 부렸어도 우리 모두 더 행복했을 거다)

4. 첫째의 낮잠을 주의한다. 혹시나 낮에 놀다 이동 중 낮잠을 자는 경우 우리들의 육아 지옥은 밤 11시까지 계속될 수 있다. 최대한 피곤하게 혼을 쏙 빼놓고 9시 전에 재울 수 있도록 한다.


아마 아이 키우는 집이라면 대부분 공감할 것 같다.


둘째가 순둥이인 덕분에 아이 둘 키우면서 그렇게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아기가 울면 모두가 신경이 예민해진다. 나도, 남편도 심지어 첫째도 그렇다. 그런데 우리 둘째는 거의 울지 않는 아기다. 배가 고플 때를 빼면 응가를 해도 낑낑거릴 뿐 울지 않는다. 우리 친정 아빠가 손녀 울음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고 하실 정도다.


그런데 이런 둘째가 오늘 심하게 울었다. 왜인지 이유를 모르겠다. 지나고 생각해보니 졸렸던 것 같다. 어제부터 엄마가 너무 오빠랑만 있어서 삐진 건가 싶을 만큼 울었다. 이제 둘째도 서서히 의사표현을 하는 건가? 분유 줄 시간은 안됐고 응가를 한 것도 아니다. 딱히 이유를 모르겠다. 둘째가 계속 우니 난 멘붕이 왔다.


"여보, 얼른 데리고 나가."


괜히 남편한테도 첫째를 데리고 나가라고 신경질을 내게 된다. 그간 우리 첫째는 자기가 하고 싶었는데 못했던 것들을 잔뜩 쌓아두고 오늘 하겠다고 벼르고 있었다. 오전에 충분히 원하는 걸 하라고 했는데, 자기가 하고 싶다는 숨은 그림 찾기나 그림 그리기를 하는 동안 계속 징징거리고 버릇없이 굴길래 내가 좀 혼냈다. 그때부터 약간 혼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첫째와 둘째가 번갈아가며 울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러다 나까지 울겠어!!!'


애들 우는 소리는 엄마, 아빠도 듣기 힘든 소리다. 그런데 두 명이 동시에 울어재끼니 난감하다. 남편은 첫째를 데리고 어딜 가야 할까 계속 고민한다.


'아니 아니, 그냥 무조건 나가라고!!! 고민은 놀이터에서 하던가!!!'


내 마음의 소리는 남편까지 책망한다. 그러다 계속 꾸물거리는 아빠와 아들을 보고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 소리에 첫째가 또 운다. 이건 진짜 내가 실수한 것 같아 바로 첫째와 남편에게 사과를 했다. 아이는 잘 진정하고 아빠와 나갔다.


이상하다. 우리 순둥이 둘째는 아빠와 오빠가 나가 조용해진 집에서도 좀 더 울었다. 둘째와 영혼의 교감을 나누는 우리 엄마가 오셨는데도 할머니 품에서까지 기분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얘가 계속 엄마만 쳐다보네."


엄마가 말씀하신다.


'혹시 이제 너도 엄마를 아는 거니? 엄마가 늘 오빠랑만 붙어 다녀서 삐진 거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설마 그렇진 않겠지. 오늘은 둘째 옆에서 자야겠다. 집중마크를 하고, 둘째를 안심시켜야겠다. 그리고 다음 주부턴 좀 더 철저히 2인 육아를 위한 계획을 세워야겠다. 괜한 요리 욕심도 주말엔 내지 않을 것이다. 둘째가 원더윅스가 온 건지 아님 엄마를 찾는 건진 모르겠지만 애 둘 육아의 매운맛에도 적응되고 우리 집 육아 노하우도 좀 더 쌓일 수 있다면 좋겠다.


4인 가족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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