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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Sep 28. 2022

내 아이가 부끄러울 때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97일째 

9월 28일(수) 내 마음처럼 흐린 가을 날씨 


내 아이가 부끄러울 때가 있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부모 자격이 없는 건가? 싶지만 솔직히 오늘처럼 내 아이가 부끄러운 날엔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내가 애를 잘못 키우고 있는 건가? 우리 애 같은 애가 동네에 있던가? 나의 어떤 점이 얘를 이렇게 만든 걸까? 등등... 


문제의 발단은 늘 그렇듯 놀이터였다. 아이는 하원 후 놀이터로 직행했다. 친구들과 간식을 먹고 잘 노는가 싶다만 남자아이들 무리와 어울리지 않고 여사친과만 놀았다. 남자아이들끼린 닭싸움도 하고 도둑잡기도 하고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하지만 유독 오늘따라 아무것도 안 하고 여사친만 졸졸 따라다녔다. 


여사친과 그네도 타고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 유치원 놀이도 하는 듯했다. 유치원 놀이는 한 명은 선생님이 되고 다른 한 명은 학생이 되어 유치원 수업을 재현하는 것이다. 아이가 선생님 역할을 맡을 때 "자, 오늘은 킨더 큐브를 배우는 날이에요. 여기를 보세요!" 하며 유치원에서 본인이 그려온 그림 종이를 들고 제법 선생님처럼 말하길래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아이가 소리 지르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미끄럼틀 위에 놀던 우리 아이와 그 여사친 외에 세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에게 텃세를 부린 것 같았다. 세 살배기 아가는 서러워 엉엉 울었고, 그 엄마가 아가를 다독이며 데려갔다. 일전에도 이 유치원 놀이를 할 때 동생들에게 텃세를 부린 적이 있었기에 난 첫째를 호되게 혼냈다.


"동생들에게 소리 지르지 말라고 했지!" 


그런데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첫째가 오히려 유치원 놀이해야 하는데 방해하지 말라며 내 훈육을 묵살하는 게 아닌가! 난 너무 화가 났지만 최대한 참으며 "동생에게 소리 지르면 안 되지! 우선 내려와서 미안하다고 해!"라고 했지만 첫째는 완강하고 되바라지게 거절하며 유치원 놀이를 해야 한다고 나에게도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 놀이를 계속하게끔 용납할 수 없었기에 당장 미끄럼틀에서 내려오라고 했고, 도무지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고 나를 놀이 방해꾼 취급하는 첫째의 유치원 놀이 준비물인 종이 프린트물을 강제로 뺏었다. 그때 내 머릿속은 하얘졌다. 지금 상황에서도 놀이를 강행하려고 하는 첫째에 대한 괘씸함과 내 훈육을 개묵살하는 첫째의 버르장머리 없음을 지켜볼 다른 보호자들의 시선이 동시에 의식되어 식은땀이 나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아, 나는 이런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는 모자란 인간이구나. 그렇게 부족한 인간이란 걸 다시 체감할 새도 없이 첫째는 울고 불고 떼를 쓰며 미끄럼틀에서 내려올 수 없다고 난리를 치고 있었다. 겨우 계단 하나하나를 엉덩이를 끌며 내려와서는 신경질을 내며 소리쳤다. 이미 그때쯤부터 난 훈육 후 다시 놀게 할 생각은 1도 없었다. 어제도 놀이터에서 떼를 써서 남편이 집에 강제로 안고 올라온 터였다. '떼쓰면 놀이 중단'이라는 어제의 약속이 무색하게 아이는 오늘 또 떼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난 남편처럼 아이를 강제로 안고 집에 올 완력은 없었다. 5살이지만 17키로고 온몸으로 집에 가길 거부하는 아이를 내가 억지로 안고 올 수 없었다. 그래서 너의 행동 때문에 더 이상 놀 수 없으니 따라오라고 하고 가방을 챙겨 집으로 데려가려고 했더니 난리가 나고 아마 그때쯤부터 아이가 바닥을 뒹굴었던 것 같다. 정말 얼굴이 화끈거리고 창피했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대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내 아이가 떼쓰는 모습을 한 번이라도 봤던 부모라면 누구나 공감하듯 내 아이가 이성을 잃었을 때 부모가 이성을 붙잡고 있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고 나 역시 침착함과는 거리가 먼 말과 행동을 이미 하고 있었다. 


어쨌든 집에 아이를 데리고 왔다. 엘리베이터에서도 엉엉 울며 나를 따라왔다. 현관문을 들어서자 온갖 분노가 쏟아졌다. 소리소리를 지르며 아이를 혼냈다. 놀이터에서 5만큼 혼냈다면 집에 와선 10만큼 혼을 냈다.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줌과 동시에 버르장머리 없이 엄마의 훈육에 반항한 죄였고 솔직히 너무 괘씸해서 내 화를 내가 이기지 못한 것도 있었다. 아이도 제 잘못을 아는지 슬슬 진정을 한 뒤 수구리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들이 아이도 나도 굴욕적인 건 매한가지였다. 


저녁 내내 아이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행동 하나하나가 거슬렸다. 밥 먹을 때도 놀이할 때도 '쟨 또 왜 저럴까?' 싶은 고까운 물음들이 이어졌다. 그토록 사랑하던 내 아이인데 말이다. 아이의 그런 행동들과 내 훈육이 먹히지 않음을 동네방네 자랑한 날 같아서 쪽팔렸다. 이제 더 이상 놀이터의 어떤 아이도 우리 아이처럼 떼를 쓰고 바닥을 굴러다니며 울거나 말대꾸를 하진 않는다. 


아이를 잘못 키웠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고, 아이에게 '버르장머리 없고 개념 없는 애'라는 꼬리표를 붙인 채 저녁 내내 괴로워하다 잠자리 책 읽기와 잠들기까지 옆에 있어주는 역할도 아빠에게 맡겨버렸다. 첫째 옆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며 아이와 대화를 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도 아이는 엄마와 자고 싶다며 울고불고하다가 아빠에게 강제 연행되어 지 방에서 잠들었다. 문밖에서 들어보니 아빠는 "그렇게 엄마가 좋다면 왜 엄마 말을 듣지 않고 엄마를 힘들게 하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이는 대답하지 못한 채 울음을 그치고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잠에 들었다고 한다. 이런 우리들의 양육방식에 어떤 문제가 있는 건지 모르겠다. 


동생이 생겨서인지 아님 내가 너무 수용적인 엄마라 진짜 버르장머리 없는 자식을 만들고 있는 건지, 정서적인 교감을 해주지 못해서인지, 훈육 방식에 잘못이 있었던 것인지 진짜 모르겠다. 나름 육아서를 탐독한다고 했는데 그럼 뭐 하나. 이럴 때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는걸. 내일은 나아지려나 모르겠다. 화내는 엄마라 떼쓰는 아이가 자라는 것인지. 그냥 다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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