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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Sep 29. 2022

나나 잘하세요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97일째

9월 28일 수요일 가을이지만 아직 낮에는 더움


나는 오지랖이 넓은 편이다. 그리고 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자랑질을 좋아한다. 이 삼박자가 맞아떨어지면 남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을 하면서 내 말이 다 맞으니까 내가 하는 대로 너도 하라는 얘기를 조언이랍시고 하게 된다. 사실 만약 나 같은 사람이 나한테 이런 비슷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한다면 설령 내용을 자세히 따져보면 맞는 얘기를 하는 것일지라도 별로 기분 좋게 듣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사람마다 원하는 삶은 다르다.


나의 이런 문제는 종종 대인관계에서 불편한 기류를 일으키는 요인이다. 특히 최근 들어 코로나와 아이들 양육이라는 상황으로 실질적인 만남의 기회는 줄어들고 주로 카톡방이나 SNS로만 소통을 하면서 이런 문제가 더 심해진 것 같다. 예전처럼 그냥 만나서 이야기를 한다면 각자의 근황을 이야기하고, 최근의 이슈들 중에 공통의 관심사에 해당되는 것들로 자연스레 대화가 전개될 것이다. 그러다 술 마시고 놀다 보면 그냥 웃긴 얘기나 옛날 얘기하기 바쁘고 진지한 얘기를 하다가도 한 명이 화장실 갔다 오면 대화 주제가 바뀌어 버린다.


그런데 카톡방에서 대화를 하면 분위기가 다르다. 특히 나만 더 그런지 몰라도 유독 더 진지충이 되는 것 같다. 카톡 기능은 쓸데없이 이미 지나간 대화까지 끄집어내서 대답을 할 수 있게 만들어놔서 못 보고 시간이 지난 얘기도 내 생각과 다르면 다시 언급을 하게 된다. 그렇다고 카톡이 문제는 아니고 그냥 내가 문제다.


요즘 고등학교 친구 카톡방에서는 대화가 활발했었는데, 오늘의 주제는 맞벌이와 육아, 재테크, 은퇴 등이었다. 내가 가장 직접적으로 겪고 있고 잘 아는 분야지만 오히려 그게 문제였을까. 나름대로 스스로 전문분야라 자부하며 열변을 늘어놓다 보니 어느새 대화는 뜸해지고 나 혼자 잘난 척과 아는 척을 늘어놓고 있었다.


오후에 자동차 서비스센터 방문할 일이 있어서 아내와 같이 둘째를 데리고 성수동에 갔다가 이 얘기를 했다.


"지금 말로 이러쿵저러쿵 해서 뭐해 그냥 나중에 잘 되면 말 안 해도 여보가 하는 게 맞았구나 하겠지"


그러면서 내가 지금 해야 되는 거나 잘하라고 한다. 정말 맞는 말이다. 결국 아직 30대에다 다들 고만고만하게 살고 애들도 아직 어린 상황에서 암만 떠들어봐야 그건 그냥 하나의 의견일 뿐이었다. 실제로 내 생각이 맞고 그게 나중에 행복한 미래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워렌버핏과 오은영 박사의 말을 듣고 생각하게 된 것을 말한다고 해도 현시점에선 그건 그냥 아직 쥐뿔도 이룬 건 없는 나라는 사람의 개인적인 주장일 뿐인 것이다. 잘 되고 나면 오지랖 부리지 않아도 알아서 사람들이 먼저 물어본다.


이런 생각을 하고 나니 지난해부터 혼자 마치 무슨 경제적 자유에 대해 깨달음을 얻은 사람처럼 친구들이며 친한 지인들에게 잘난 척 떠들어댔던 나의 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남들에게도 백번 떠드는 사람이 아니라 한 번 보여주는 사람이 되리라 다짐했다.


그 와중에 오늘 오후 하원 시간에 첫째가 놀이터에서 어마무시하게 말을 안 들었던 모양인지 아내는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잘 때까지도 풀리질 않았다. 아이가 인성적으로 잘 자라고 있지 못한 것 같다며 우리가 잘못 키우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래. 맞벌이가 더 좋고 같이 육아휴직을 하면 애를 더 잘 키울 수 있다고 암만 떠들어봐야 뭐하겠는가. 남들한테 참견할 생각 마시고 나나 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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