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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Sep 29. 2022

금쪽같은 내 새끼들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98일째

9월 29일 목요일 날씨는 좋음


아침부터 밤까지 완벽하게 힘든 하루였다. 일단 새벽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최근에 밤에 9시쯤 재우면 6~7시까지 잘 자던 둘째는 오늘 새벽에는 이상하게 2시쯤부터 깨기 시작했다. 평소보다 몇 번을 더 가다가 잠자리를 아기침대에서 역류방지 쿠션으로 옮겼고 결국 둘째 옆에서 손을 잡아주고 같이 잠에 들었다.


낮에도 비슷했는데 둘째는 평소에도 밤에는 길게 잘 자고 낮잠은 짧게 여러 번 자는 편이긴 했다. 특별히 재울 필요도 없이 어느새 잠이 들어 있다가 한 30분 뒤에 또 깨어있거나 그런 식이다. 그런데 오늘 낮에는 계속 보채면서 재우는 데는 굉장히 오래 걸리고 그 뒤에 한 10분 만에 깨고 이런 게 반복됐다. 그러다 보니 아내와 나는 둘째가 낮잠을 자거나, 잠은 안 자도 혼자 잘 누워서 놀고 있으면 할 수 있었던 것들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첫째였다. 어제 아내에게 크게 혼나고 울면서 잠에 들었던 녀석은 오늘 아침에는 그래도 조금 나아진 모습이었다. 하지만 오후 하원 시간에는 3일 연속으로 놀이터에서 집에 끌려들어갈 뻔했다. 유치원에서 만들어온 컵케잌을 먹다가 바닥에 떨군 것을 시작으로 또다시 억지를 부리고 떼를 쓰려고 했기 때문이다. 붙들고 심각하게 이야기도 해보고 달래기도 하면서 겨우 진정을 시켰다. 그 사이 장모님이 오랜만에 간식을 가지고 놀이터로 나오셔서 첫째도 한껏 기분이 풀어졌다.


그런데 그 사이 집에 있던 아내에게 연락이 왔다. 유치원 선생님에게 전화가 와서 요즘 첫째가 유치원에서 약간의 문제행동들이 많아졌다며 조심스레 ADHD 검사를 받아보는 것을 권하기까지 했다는 것이었다. 물론 오늘 놀이터에서는 더 이상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고, 아내가 잠깐 유모차에 둘째를 태우고 나오면서 놀이터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우리 아기를 예뻐해 줘서 나도 기분이 좋았지만 마음 한구석에 찜찜함은 지울 수 없었다.


결국 저녁에 집에서 한바탕 더 소동이 벌어졌다. 첫째가 자기 혼자 정한 규칙대로 행동하려고 억지를 부리거나, 아내와 내가 묻는 말에는 제대로 대답하지 않고 말로 의사표현도 똑바로 해내지 못하면서 알아듣지 못하게 한 단어만 반복하며 떼를 쓰는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내가 어제의 아내보다도 더욱 화가 나서 아이를 다그쳤다. 이렇게 행동하는데 아무리 다른 애들보다 수학과 영어를 좀 더 알아서 뭘 하겠는가? 한글도 빨리 떼고 책도 많이 읽고 분명 언어능력이 높아야 정상일 텐데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


그래도 최대한 알아듣게 설명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첫째가 하고 싶은 말에 따라서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지 시범을 보여주기도 하고, 어른들이 무엇을 하라고 하면 "알았어"라는 말 대신 행동을 하라고 알려주었다. 또 대답을 할 때 고개만 끄덕이거나 가로젓는 행동 말고 말로 대답을 하라고 했다. 너는 분명히 말도 다 알아듣고 똑똑하고 착한 아이니까 분명히 이해하고 잘 해낼 수 있다고 격려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이걸로 얼마나 나아질지 확신은 들지 않는다. 아내는 옆에서 ADHD 검사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나는 오은영 박사의 <금쪽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가끔 아내가 공유해주는 영상 클립을 봤던 게 전부다. 사실 내 애들 키우기도 힘들고 스트레스받을 일이 많은데, 남의 애들 키우면서 힘든 것까지 보면서 숨이 막힐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근데 오늘 같은 날에는 거기에 사연을 응모해볼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아니 일단 응모하기 전에 우리 첫째와 비슷한 문제를 보여주었던 방송이라도 한번 찾아보아야겠다. 우리 금쪽같은 내 새끼들아. 공부 못해도 좋으니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주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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