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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Sep 29. 2022

어떻게 말해주어야 할까?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98일째 

9월 29일(목) 맑음  


유치원 선생님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가 하원 때 유치원 실내화를 신고 갔다는 것이었다. 하원 담당은 남편이고, 남편은 첫째와 놀이터에서 놀고 있었다.  


실내화를 신고 간 것은 아마 제 때 신발을 갈아 신지 않아서 생긴 일 같았다. 선생님이 하라고 한 것을 제 때 하지 않다가 급히 나가면서 생긴 일일 것이다. 선생님은 첫째에게 그간 여러 번 주의를 주었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 부분에 대해 같이 이야기해주셨다. 친구를 피해 가거나 움직일 때 너무 산만할 때가 많아 신체 조절 능력에 문제가 있으며, 선택적 집중 장애가 있다는 것 등등의 말들이었다.  


나는 선생님 얘기를 들으며 집의 상황도 알려주었다. 요 며칠 첫째가 말을 잘 듣지 않아 혼낸 적이 많았으며 집에서도 같은 문제로 부모님 속을 썩이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내가 왜 그렇게까지 아이의 단점들만 선생님에게 일러바쳤을까. 


"이것도 문제고 저것도 문제고 제 말도 잘 듣지 않고요..." 


처음엔 속상하기만 했다. 아이가 답답했다. 그러다 선생님한테 말한 이야기들도 후회가 되었다. 어련히 객관적으로 잘 봐주셨겠지만 동생이 태어나고 최근 나에게 여러 번 혼나며 아이 나름의 이상행동(?)을 하게 된 이유가 있을 텐데. 내 아이를 이해해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나인데 그런 상황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고, 우리 애 이것도 저것도 잘못했어요! 하고 고자질한 것 같았다. 담임선생님을 믿지만 아이의 단점을 다 알고 아이를 보면 더 못난 점들이 보일텐데. 나마저 우리 아이를 삐딱하게 보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마찬가지겠지. 낙인은 내가 찍고 있다.   


남편도 나도 요새 들어 첫째에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에 지쳐가고 있다. 혼낼수록 말을 듣지 않고 오히려 말대꾸를 하는 상황이 늘어갔다. 그러면 더 강하게 아이를 혼내야 하고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강제하게 되었다. 아이는 힘들어하고 있다.  


하루 24시간 중 깨어있는 14시간. 그중 반이 넘는 8시간을 유치원을 위해 쓴다. 나머지 6시간 중 밥 먹고 씻는 시간이 2시간이라면 나머지 4시간이 남는다. 그중 2시간을 놀이터에서 쓰고 나머지 2시간에 자잘하게 본인이 원하는 할 일들을 한다. 하고 싶은 건 많지만 늘 시간이 없다는 첫째에게는 짧은 시간이다.  


"시간이 없어. 빨리 해." 


우리가 첫째에게 제일 자주 하는 말이다. 첫째도 이 말에 강박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 같다. 어떨 땐 잠꼬대로 "빨리 해야 해. 빨리빨리!"를 외친 적도 있다. 깨어있을 때에도 "우리 정말 바쁘다"란 말을 많이 한다.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 할지 고민이 되지만 한 가지는 알겠다. 아이의 자존감을 갉아먹는 훈육을 하지 말아야겠다.  


분명한 것은 지금 우리 아이가 소리 없는 외침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 나 힘들어요." 

이 소리에 어떻게 응답해주어야 할지 오래오래 차분히 고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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