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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Sep 30. 2022

엄마 나는 자라고 있어요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99일째

9월 30일(금) 미세먼지 나쁨


어제 유치원 선생님과 통화를 한 이후 남편과 나는 고민이 많아졌다. 충동적이고 과장되며 절제되지 않은 행동들을 어떻게 훈육하면 좋을 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훈육 언어에 대해서도 고민이 됐다. 어젯밤 남편과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책장에 꽂혀있던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오은영 박사님의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였다.


첫째가 두세 살이 됐을 무렵 샀던 책이었다. 한참 훈육을 시작할 때 샀던 책인데 다시 읽어보니 그때보다 공감 가는 내용들이 많았다. 형광펜을 그어가며 한 줄 한 줄 다시 읽고 우리 상황에 맞는 말들을 되뇌었다. 그렇게 한 시간 만에 한 권을 다시 정독하고 남편에게 책을 건넸다. 내가 형광펜 쳐 둔 부분이라도 다시 읽기를 부탁했고 남편도 성실히 읽었다.


그리고 다음 날인 오늘 아침, 첫째는 일어나자마자 짜증과 생떼를 부렸다. 어젯밤의 노력이 무색하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나의 행동과 말에 자신이 없었다. 아이가 금쪽이가 되면 아이는 자신을 통제하는 게 어려워지고 부모는 머릿속이 새하얘진다. 알던 것도 잊어버리고 무기력한 대처를 하게 된다. 결국 아이는 울고불고하다 제 풀에 지쳐 식탁으로 왔다. 짧은 시간 안에 아침을 먹어야 하는 상황을 못 견뎌했던 것 같은데 등원 버스는 이미 놓쳤기에 같이 준비를 하고 걸어서 등원을 했다. 아이에게 시간 맞춰 빨리 준비해야 함에 대해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그냥 아이도 나도 지쳤고 늦게 준비해 버스를 놓치면 힘들게 걸어가야 한단 걸 가르쳐주고 싶었다.


반전은 아이는 나와 걸어서 등원하는 걸 너무 신나 했었다는 것이다. 유치원까지 가는 길은 생각보다 멀지 않았고 아이는 매번 걸어 다니는 길을 두리번두리번 즐거워하며 유치원에 잘 들어갔다. 이러다 매일 천천히 준비하고 걸어서 유치원에 가자고 할까 봐 겁이 날 정도였다.


오후 시간엔 남편과 '금쪽같은 내 새끼'를 봤다. 남편은 내가 이런 프로그램을 보는 걸 이해하지 못했었다. 내 아이 키우는 것도 힘든데 다른 아이 힘들게 키우는 걸 스트레스받게 왜 보냐는 거였다. 그런 남편이 먼저 '금쪽같은 내 새끼'를 검색해서 다른 아이들의 사례를 찾아보는 걸 보면서 우리가 둘 다 굉장히 절박한 상황이라는 걸 다시금 느꼈다. 우리 첫째의 행동들이 ADHD와 유사하기에 ADHD 아이의 이야기를 찾아보았다. 우리 애와 비슷한 부분도 일부 있었으나 이질감이 느껴지는 행동유형들도 많아 보였다. 그 아이의 학교 선생님이 부모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을 본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핸드폰에 첫째 유치원 전화번호가 떴다.


'이런... 오늘은 또 무슨 일이...?'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다행히 선생님은 첫째가 ADHD 같은 검사를 지금 받을 필요는 없어 보이며, 오늘은 유치원에서 많이 개선된 행동들을 했다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앞으로 유치원과 가정에서 계속 잘 지켜봐 주면서 아이의 행동들 중 개선이 필요한 부분들을 같이 상의해 해결해 나가 보자고 하셨다. 선생님과 전화를 하며 집에서의 첫째에 대해 이런저런 말씀을 드리게 되었는데 그러다가 내 눈물보가 터져버렸다. 눈물이 나 제대로 말을 하지 않는 원생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차분히 공감하고 위로해주던 담임선생님의 따듯한 배려에 더 눈물이 났다.


'아... 이런.. ㅠㅠ 주책맞은 눈물샘아, 그쳐라.'


어쨌든 통화는 잘 마쳤다. 너무 높은 수준의 생활 태도 개선을 요구하지 않되 친구와 나의 안전에 위협이 될 만한 문제행동에 있어선 단호하게 훈육하는 것으로 정리가 되었다. 이 부분은 남편과도 잘 얘기했고 앞으로 계속 노력해 보자고 부부간에 약속을 했다.


그리고 오늘 아이는 귀가 후 별 문제 행동을 보이지 않고 잘 놀다 잘 자고 있다. 이 아이를 문제아라고 생각하면 문제아가 되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닌 것 같다. 더 많이 사랑해주고, 안아주고 믿어주면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 이건 정말 어려운 부분이다. 그렇지만 노력하면 가능할 것이다. 언젠가 우리 아이가 어른들의 노력을 자양분 삼아 의젓한 형님이 되면 좋겠다. 아이를 믿자. 아이들은 믿는 만큼 자라난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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