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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Oct 01. 2022

같은 책을 보면 같은 꿈을 꾼다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99일째

9월 30일 금요일 날씨 좋음


우리 부부가 같이 육아휴직을 한지도 어언 100일이 다됐다. 예전에 각자 바쁘게 회사를 다닐 때보다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을 생각해보면 부부가 함께 있는 시간이 훨씬 늘어났다는 점이다. 어찌 보면 첫째의 경우 유치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놀이터에서 놀고 들어오면 저녁 시간이므로 휴직 전과 큰 차이는 없는 편이다. 둘째는 부부 둘 중 한 명이 번갈아가며 거의 항상 같이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 함께 무언가를 한다고 볼 순 없다. 결국 휴직을 하고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아내와 함께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라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예전에도 우리는 같이 보거나 서로 공유하는 콘텐츠들이 많이 있었다. 둘 다 비교적 소화할 수 있는 장르의 범위가 넓고 취향도 엇비슷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만 그 콘텐츠들은 OTT의 드라마나 서바이벌 예능 프로그램 등 대부분 재미를 위한 것에 불과한 것이 많았다. 대체로 퇴근 후에 첫째를 재우고 나면 짧은 두어 시간 정도만이 허락되었기에 소모되는 시간은 적고 즐거움은 빠르게 얻어야만 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런데 휴직을 한 이후에 낮에도 시간이 다소 여유가 생기면서 우리는 책을 보는 시간이 생기게 됐다. 물론 기존에 보던 것처럼 흥미 위주의 콘텐츠도 많이 보긴 했지만, 같은 책을 보거나 책을 서로 추천도 해주고 있다. 사실 원래 우리 부부는 둘 다 문과 출신에 문과 계열의 직업을 갖고 있으며, 어릴 때부터 나름 책 읽기를 좋아한 편이었다. 물론 회사를 다니면서 개인 시간의 여유는 없어지고 스마트폰을 붙들고 살면서 책을 멀리하게 됐지만 집에는 나중에 시간이 많아지면 보려고 사놓은 책들이 은근히 꽤 있었다.


일단 내가 올해 초에 재택근무를 하면서 남는 시간에 책꽂이에 있는 것들 중에 몇 권을 꺼내서 보면서 시동을 걸었었고, 결정적으로 휴직 이후 아내가 동네 도서관에 자주 다니게 되면서 우리 집에 본격적인 독서 붐(?)이 시작됐다. 물론 나는 주로 재테크 관련 서적을 읽고 아내는 육아에 관련된 책들을 읽긴 했다. 그런데 결국 이 주제들은 우리의 부부 생활과 앞으로의 인생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들이었고 서로 교집합이 점점 늘어났다. 오늘 나는 아내가 밑줄까지 그어준 '어떻게 말해줘야 할까'와 아내가 도서관에서 빌려온 '30대 맞벌이 부부의 30억 부동산 재테크'라는 책을 읽었다. 아내도 내가 예전부터 추천한 부동산 투자 책을 보기 시작했다.


부부가 같은 책을 읽어보니 이 효과는 상상 이상이다. 일단 직접 서로 대화를 많이 하는 것 이상의 효과가 있다. 아무리 붙들고 설명을 해도 잘 들어주지 않던 얘기들이 책을 읽으면 마음에 금세 와닿는다. 아무래도 비전문가인 우리가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아서 누군가에게 그것을 공유하기 위해 열을 올려도 훌륭한 작가들이 공들여 쓴 책의 원문만큼 설득력이 있을 리는 없는 것이다. 더 좋은 것은 제삼자의 글이므로 굳이 반박할 일도 없어지고 맞니 틀리니 따지지도 않게 된다. 그리고 그 책의 내용을 받아들였다면 서로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은 서로 마주 보는 게 아니라 같은 곳을 보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같은 곳을 보려면 같은 책을 보면 된다. 같은 곳을 보다 보면 같은 꿈을 꾸게 된다. 서로가 추천하는 책을 계속 보다 보면 우리 부부는 더 이상 '동상이몽'이 아니라 '일심동체'가 되고 서로 같은 꿈에서 만날 수도 있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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