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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Oct 02. 2022

100일간의 휴직 생활을 돌아보며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100일째

10월 1일 토요일 맑음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100일째가 됐다. 보통 사람이 무언가를 시작하고 적응하는 데 100일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태어나고 100일, 연애를 시작하고 100일, 신병 입대를 하고 100일, 취임 100일 이런 것들을 다들 챙기는 것 같다. 우리의 휴직 생활도 되돌아보면 지난 100일간의 적응기가 그럭저럭 끝나가는 듯하다.


휴직을 시작하자 마자는 회사를 안 가는 게 마냥 좋았고 아직 둘째는 태어나지 않아서 거의 휴가처럼 신나게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그러다 둘째가 태어나고는 산후조리원과 집으로 단절되는 생활을 버텨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신생아 육아기는 꽤 만만치 않았지만 막상 그리 길지는 않았다. 대신 그 과정에서 아내와 나는 약간의 산후 우울증과 일종의 권태기가 겹치면서 정서적으로 흔들리는 시기도 있었다. 이게 어느 정도 극복이 되자 최근에는 첫째가 약간의 문제아 기질을 보이면서 속을 썩였다. 이렇게 기간별로 보면 우여곡절도 많고 말 그대로 좌충우돌하며 시간이 흐르는 것 같지만 전체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럭저럭 잘 되고 있다.


오늘은 아내가 첫째를 데리고 외출을 하고 내가 오후 내내 둘째와 집에서 시간을 보냈다. 첫째를 데리고 외부활동을 하면 할 수 있는 것이 많고 시간도 심심하지 않게 잘 간다. 반면에 둘째랑 집에 있으면 사실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얘가 잠을 자면 그 틈에 얼른 샤워를 하고 밥을 먹어야 하고, 그 외에 깨어있는 시간에는 놀아준다. 3개월 아기랑 놀아주는 방법은 뭐 대단한 건 없다. 안고 집안을 돌아다니면서 구경을 시켜주거나 마주 보면서 얘기를 걸어주면 된다. 이제 100일이 가까워오는 만큼 오늘은 뒤집기 연습도 시켜봤다. 얘도 이제 세상에 생존하는 것에는 어느 정도 적응을 했으니 생존에 직결되진 않지만 새로운 스킬을 배울 때가 된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우리는 2대 2로 분리해서 효율적으로 육아를 하는 것에 익숙해졌고 오늘도 큰 어려움 없이 하루가 흘러갔다. 내일은 오늘과 임무를 교대해서 내가 첫째를 데리고 나가는 일정이 계획되어 있다. 아이들을 재운 뒤 100일을 기념할 겸 아내와 간단히 술을 한잔 했다. 사실 그러다가 일기도 올리지 못해서 오늘 올리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둘째가 먹고 자는 것에는 이제 적응해서 다른 것들을 점차 터득할 때가 되었듯이 우리 부부도 이제 육아와 집안일처럼 꼭 해야 하는 것 외의 것들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조금씩 생기고 있다. 오늘 같은 경우는 둘째가 낮잠을 길게 자는 타이밍에 유튜브 편집도 꽤 많이 할 수 있었다. 책을 보는 시간도 점차 늘어나고 있고 이번 주에는 드디어 12월에 있을 제주도 한 달 살기 계획을 끄적여보기도 했다.


100일간의 휴직 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건 아내와 내가 서로 거의 같은 임무를 부여받은 운명공동체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자 자기가 한 일을 위주로만 생각한다면 혼자 일을 다 하고 상대방은 놀거나 게으름을 피운다는 착각을 하기 쉽다. 이를 방지하려면 상대방이 한 것을 위주로 생각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이를테면 내가 하지 않았는데 어느새 개어져 있는 이부자리,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돌아가고 있는 빨래, 자고 일어났더니 이미 아침을 다 먹고 잘 놀고 있는 첫째, 이런 것들이다.


이제 같이 휴직하는 기간은 거의 절반이 지났고 후반전 100일이 남았다. 전반전은 적응기였다면 후반전은 티키타카로 골 폭풍을 몰아치는 신나는 시간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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