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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Oct 05. 2022

나쁜 아빠의 일기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104일째

10월 5일 수요일 찬바람이 싸늘하게


좋은 아빠가 되고 싶었다. 원래는 좋은 아빠가 되는 방법을 안다고 생각했다. 그저 우리 아버지가, 혹은 할아버지가, 혹은 친구의 아버지들이 했던 행동들 중에 좋았던 점은 닮고 싫었던 점은 닮지 않으면 된다. 간단하다. 그리고 이렇게 실천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도 가지고 있다고 믿었다.


오늘도 분명 밤 9시까지는 좋은 아빠였다. 아침에 모두가 늦잠을 잤지만 슬기롭고 차분하게 대처했고 지금까지 너무 서두르고 재촉하는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고 생각해 앞으로 등원 버스 타는 시간도 조정했다. 유치원 버스를 타러 나가서도 즐겁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배웅을 하고 돌아왔다. 완벽한 아침이었다.


쇼핑몰에 가서도 아이 생각을 가장 많이 했다. 예전에 아이를 데리고 갔던 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몇 년 전 아기 때의 모습을 추억했다. 마트에서는 오늘 저녁에 아이가 맛있게 먹을 수 있을만한 고기와 요리를 고민하며 카트에 담고, 내일 소풍에 가져갈 과자와 음료수를 고르고, 앞으로 놀이터에 가지고 나갈 간식거리도 신중하게 선택했다. 신발 가게에서 아내가 운동화를 고를 때 아이의 취향에 맞을지 상상하며 토론을 하기도 했다.


오후 하원은 아이 엄마가 나갔다. 집에 들어온 이후에 아이는 계속 말을 잘 듣지 않았고 엄마에게 자꾸만 혼이 났다. 그 와중에도 나라도 평정심을 유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샤워를 시키고 머리를 말리고 로션을 바르고 옷을 입고 밥을 먹이고 그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탐탁지 않은 순간도 있었지만 잘 참아냈다. 그래 난 할 수 있다. 아무리 말을 안 듣고 떼를 써도 말로 가르쳐주며 웬만하면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웃으면서 잘 훈육을 할 수 있다! 난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결국 자기 전 양치질을 하면서 모든 게 물거품이 됐다. 아이는 오늘부터 치카를 할 때 동영상을 보지 않기로 엄마와 약속을 했지만 잘 받아들이지 못했고, 저녁 내내 아이를 혼내거나 실랑이를 벌였던 아내보다는 내가 맡아서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실패였다. "아~해"라는 말을 여러 번 한다고 짜증을 내고 "이~"하라고 했더니 입에 있던 치약 거품을 옷에 다 흘렸을 때까지도 참아냈지만, 입을 헹구는 '우물우물 퉤'를 대충 해서 다시 하라고 하자 악을 쓰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 얼굴에 물을 뿌려버리고 말았다.


사실 최근 들어 나는 이렇게 화를 참지 못하고 아이에게 표출하는 일이 잦아지는 것 같다. 며칠 전에는 씻고 나와서 옷을 입지 않고 침대에 엎드려 딴짓만 하는 아이의 엉덩이를 때렸다. 몇 달 전인가 음식을 먹다가 뱉은 아이를 안고 가면서 엉덩이를 때렸다가 아내에게 다시는 체벌을 하지 않기로 약속했지만 참지 못했다. 바로 사과했다. 그렇지만 엊그제 강릉에서도 아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어제도 저녁에 아이에게 화를 냈다. <어떻게 말해주어야 할까> 책을 봐도, 오은영 박사님과 최민준 소장님의 강의를 들어도 결국 그날의 인내심이 한계가 오면 이렇게 돼버리고 만다. 내가 싫었던 아버지가 나에게 하던 행동을 내 아이에게 하고 있다. 정말 싫다.


고작 5살 아이가 말을 안 듣고 반항을 해 봐야 얼마나 하겠는가. 소리를 지르면서 울거나 말 한대로 안 하고 우기는 정도 수준이다. 얘가 학교에 다니고 사춘기를 보내고 청년이 되면 그런 문제가 아닐 것이다. 그땐 내가 윽박지르고 화를 낸들 소용도 없겠지. 나는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까?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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