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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Oct 06. 2022

마음먹은 대로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105일째

10월 6일 목요일 산책하기 좋은 날


어젯밤 아내와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첫째의 훈육 방법을 의논했다. 사실 생각해보면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첫째는 우리의 걱정거리가 아니었다. 매일 써온 일기 덕분에 우리는 지금까지의 휴직 생활의 흐름을 쉽게 되돌아볼 수 있었다. 초반에는 신생아를 키우는 고단함과 불규칙한 생활, 집에 매여 육아만 하는 산후 우울증이 어려움이었고 그 뒤로는 첫째의 건강 문제나 아내와 나 사이의 불협화음이 우리 가족에게 가장 큰 걱정을 안겼다. 즉 우리 첫째가 원래부터 문제아거나 계속해서 우리 속을 썩여온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최근 들어 첫째의 훈육이 가장 심각한 문제로 급부상한 것은 어쩌면 사람이 여러 곳이 아파도 가장 아픈 통증 하나만을 느끼듯이 다른 문제들이 이제 우리 마음에 큰 데미지를 주지 않고 있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결국 아이가 갑자기 이상해진 것은 아니므로 부모인 우리가 마음을 고쳐 먹어보기로 했다. 다그치고 지적할수록 더 못난이가 되어가는 것 같았기에 반대로 못마땅한 모습이 보여도 최대한 좋은 면을 봐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한 것이다. 마침 오늘은 첫째가 유치원에서 소풍을 가는 날이었고, 아침 등원 시간에도 어젯밤의 문제는 사라지고 기분 좋게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오후에 집에 잠깐 들르신 장모님도 너무 아이를 다그치지 말고 조금 느긋한 마음을 갖고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해주셨다.


하지만 어제까지의 떼쟁이였던 우리 아이가 오늘 갑자기 달라질 순 없었다. 유치원 하원을 담당했던 아내의 말에 따르면 놀이터에서는 오늘도 잘 놀다가 유난스러운 요구를 하며 떼를 쓴 것 같았다. 저녁을 먹을 때도 국은 입에도 대지 않았고 국이 닿은 숟가락을 닦아달라고 했다. 고기는 한 개를 먹어보긴 했지만 질기고 맛이 없다며 더 이상 먹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평소 같으면 아내나 내가 분명 혼낼만한 행동을 빈번하게 했지만 우리는 그냥 너무 얘를 다그치는 데 진을 빼지 않았다. 필요한 말만 하고 감정은 빼고 넘어갔다.


그런데 이렇게 하니까 오히려 나아졌다. 애플망고를 먹지 않겠다고 해서 그냥 먹지 말라고 하고 아내와 내가 맛있게 먹었더니 자기도 먹어보겠다고 했다. 같이 정한 시간을 지켜서 놀이나 그림 그리기를 멈출 줄도 알았으며 동영상을 보지 않고 양치질을 하는 것도 별문제 없이 성공했다. 적어도 오늘 저녁엔 집에 큰 소리가 나지 않았고 첫째가 울음을 터트린 적도 없었다.


사실 오늘 내가 좋아하는 LG트윈스는 8회에 역전패를 당했다. 나는 야구를 TV로 보지 않고 대개 저녁에 집안일이나 할 일을 하면서 한쪽 귀에 에어팟을 꽂고 중계를 듣기만 하는 편인데, 보통 이렇게 경기 막판에 역전 홈런을 맞았다면 그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렇지 않았다. 이미 며칠 전부터 올 시즌 순위가 2위로 확정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기면 좋지만 져도 그만이니까 자연스레 화도 안 나게 됐다. 경기도 졌고 과정도 안 좋았지만 신인 선수의 활약 등 나름대로의 긍정적인 면을 생각할 수도 있었다.


결국 야구든 육아든 무엇이든 간에 내가 화가 나는 이유는 결과가 잘못되어서도, 과정이 문제가 있어서도 아니었다. 모든 것은 내 마음에 달려있다. 왠지 내일부터는 마음을 조금은 다르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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