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봤는데요, 안 해봤습니다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12일째

by 디내누

7월 5일 화요일 날씨는 모름


앞으로 평생 기억될 하루였다. 언젠가 주마등의 한 페이지를 차지할 장면도 기록됐다.


유도분만을 하려면 아침 7시까지 병원에 가야 해서 아침부터 분주했다. 만약 진행이 더디거나 뭔가 문제가 생겨 오래 걸릴 것을 대비하고 가급적 담당 선생님이 진료 중인 시간 내에 분만을 하기 위함이다. 미리 출산 가방도 싸놨고 아침 6시에 일어났지만 준비하다 보니까 시간이 7시가 넘어버렸다. 사실 늦으면 비행기가 떠나는 것도 아니다 보니 괜히 뭔지 모르게 여유를 부려도 될 것 같았다. 병원은 집에서 차로 5분 거리였다.


우리는 7시 15분쯤 병원에 도착했다. 입원 절차를 위해 둘 다 코로나 검사부터 했다. 그나마 이 망할 놈의 코로나가 가장 심할 때 출산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둘 다 음성. 그로부터 한 30분 정도 아내는 이것저것 준비를 했고 대략 7시 50분에 유도제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유도제는 자궁 수축을 유발해서 분만이 빠르게 진행되도록 유도하는 약이다. 원리가 뭔지는 몰라도 이런 건 대체 누가 개발하는 건지 대단하다 싶었다.


원래 전혀 진통이 없었던 아내는 유도제가 들어가고 나서 30분 정도 지나서부터 진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참고로 출산 시에 산모에게는 2개의 패드 같은걸 부착한다. 하나는 태아의 심박수를 체크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태동과 진통을 측정하는 것이다. 심박수는 일정하게 유지되어야 하고, 진통이 점점 강해지고 간격이 짧아지면 그만큼 아기가 나올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다. 사실 분만 과정에서 남편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아내가 뭔가 할 때 옆에서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하고, 저 수치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지켜보는 정도다. 그나마 간호사분들이 가끔 뭔가 서류를 가져와 보호자가 작성해달라고 주면 내 역할이 생겨서 반가웠다.


9시에 담당 선생님이 왔다 가시기 전후로 진행이 갑자기 빨라지기 시작했다. 0~100 사이로 나타나는 자궁 수축 숫자가 일시적으로 50 이상 올라가는 때도 있었고, 선생님이나 간호사들이 상태를 보면서 아마 오전 내로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진통이 빨리 올라가면 맞을 수 있도록 무통주사 동의서 작성이나 무통주사를 투입할 수 있는 조치도 미리 해두었다.


사실 지금까지 쓴 것들 대부분은 4년 전에 첫째를 낳을 때 해봤던 것들이었다. 그렇다 보니 뭔가 할 때마다 4년 전과 비교를 하게 됐다. 하지만 병원이 달라졌고, 여러 상황이 차이가 있다 보니 해봤던 것 같아도 대부분 기억이 나질 않았다. 해보긴 해봤는데, 안 해본 것 같았다.


아내와 나의 머리보다 4년 전의 경험을 잘 기억하고 있던 것은 바로 아내의 몸이었다. 사실 담당 선생님이 우리에게 자연분만을 권한 가장 큰 이유도 이것이었다. 첫째가 이미 한번 힘겹게 지나가며 닦아놓은 길이 있으니 상대적으로 둘째는 훨씬 수월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정말로 다행히 아내의 몸은 4년 전에 첫째를 내보냈던 기억을 되살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9시 50분에 무통주사를 놓고 30분 정도 지나자 간호사 선생님이 자궁문이 5센티 정도가 열렸다고 했다. 그러더니 부랴부랴 분만 준비를 시작했다. 이 속도면 이제 아기가 자세만 제대로 잡혀서 골반 사이로 머리가 들어오면 금세 나올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10시 40분쯤 되자 자궁문이 거의 다 열렸다며 담당 선생님을 호출했다. 47분에 선생님이 올라오셨다. 아내가 지시대로 힘을 주는 소리가 들렸다.


"자 이제 다음번에 느낌 오면 힘 길게 주세요! 아기 낳을게요!"


그리고 10시 50분,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에게 와서 탯줄을 자르라고 했다. 나는 4년 전에 잘라봤는데도 어디를 잘라야 하는지 헷갈려 머뭇거렸고, 탯줄이 생각보다 두껍고 질기다는 느낌에 다시 한번 놀랐다. 간호사님의 도움을 받아 갓 태어난 아기의 사진과 동영상을 바쁘게 찍었다. 아기는 예정일에 비해서 체중이 적게 나가서 너무 왜소할까 봐 우리가 걱정했던 것과 달리 튼튼해 보였고 머리카락도 아주 많았다.


"2022년 7월 5일 오전 10시 50분, 2.7kg 여아 건강하게 출산하셨습니다!"


일단 얼른 부모님, 가족들과 가까운 친구들에게 기쁜 소식을 알렸다. 아내는 잠시 몸을 추스르며 휴식을 취했고 나는 입원실로 올라갈 채비를 했다. 아내와 나는 약간 어안이 벙벙했다. 사실 첫째 때는 새벽 4시에 양수가 터져서 급히 병원에 왔고 오후 2시 30분에 힘겹게 출산했는데 그나마도 병원에서는 순산했다고 했었다. 그 기억과 대조해보면 너무 쉽게 (아내는 쉽게 낳았다고 하면 싫어하지만 비교적 그렇다는...) 아기가 뿅 나와서 믿기지 않는 기분이었다. 아내는 둘째가 정말 고맙다며 이름을 효녀라고 지을 기세였다.


12시쯤 입원실로 올라왔고 1시쯤 점심을 먹었다. 아내와 나는 우리가 불과 몇 시간 전에 아침을 먹고 병원에 왔는데 오전에 아기를 다 낳고서 병실에서 점심을 먹는게 신기하다며 웃었다.


앞으로도 이런 날들이 많겠지. 첫째를 키우며 다 해봤지만, 마치 처음 하는 것 같은 일들의 반복일 것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다. 모든 아기는 다 다르다. 해봤다고 생각하고 대충 허투루 돌볼 수는 없다. 모든 사람의 인생도 다 다르다. 나의 딸, 우리 집의 둘째 아이, 그리고 한 사람의 인생이 오늘 시작됐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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