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이름은?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13일째

by 디내누

7월 6일 수요일 맑음


아기를 낳으면 이름을 지어야 한다.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지만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마침내 꽃이 될 수 있다.


물론 원래도 부르는 태명은 있었다. 하트였다. 하트라는 태명은 내가 지었다. 장인어른이 태몽을 꾸셨는데, 그 꿈이 건물이 활활 타오르는 '불 꿈'이었다. 첫째가 아들이라 둘째는 딸이길 은근(?) 바랐던 우리 부부는 태명부터 너무 남성적인 이름보다 중성적인 느낌을 주고 싶었다. '불꽃이' '통키(피구왕, 불꽃슛)' 이런 태명은 누가 봐도 남자애 같으니까. 그래서 다른 방향으로 생각했는데 불은 뜨겁고 뜨거운 건 핫(Hot)한 거니까 뜨거운 심장이라는 의미까지 담아 하트라고 하자고 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잘 지었다.


사실 임신 기간에 이미 우리는 매일 하트라고 부르고 있었고 첫째는 동생의 이름이 이하트라고 하고 다녔다. 태명도 이름은 이름이니까. 어쨌든 그렇다고 진짜로 본명을 하트라고 할 수는 없었고, 우리는 몇 가지 후보를 떠올리며 나름대로 작명 어플의 도움을 받으며 틈 날 때마다 이름을 지어보곤 했다.


하지만 이름은 사주와 맞아야 하는 법. 뭐 그냥 돌림자 따르거나 부모가 짓거나 순한글 이름으로 짓는 경우도 많지만 이름만큼은 뭔가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 나는 원래 첫째 이름을 지어주었던 분에 대한 신뢰가 좀 있었고, 아내도 동의하여 그분에게 작명을 부탁했다. 성별과 생년월일시를 알려드리고 우리 부부가 원래 생각해보았던 이름 중에 괜찮다 싶었던 것들을 몇 개 공유했다. 너무 요즘에 유행 타는 흔한 이름이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것과 너무 어린 여자애 이름스러운 것보다는 오히려 좀 중성적이면 좋겠다는 의견도 전달했다.

.

.

.

작명과 별개로 오늘은 아침부터 첫째 등원을 시키고 병원에 돌아왔다. 병원 주차장이 협소한 편이라 입원일과 퇴원일 말고는 병원 진료 시간대에는 주차를 다른 곳에 해야 했다. 참고로 자연분만은 입원일에 출산을 했다면 두 밤을 자고 3일째에 퇴원해 산후조리원으로 간다. 차를 빼놓고 짐도 좀 갖다 놓고 필요한 물건을 가져오기 위해 아침 8시 반쯤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마침 첫째가 외할머니와 함께 유치원 등원하러 일찌감치 나와 있었다. 어제 하루 안 봤을 뿐인데 굉장히 오랜만에 만난 기분이었다.


"아빠~~!"


아이가 반갑게 뛰어와 안겼다. 어젯밤에 엄마 찾고 울다가 잠들었고 아빠한테는 별로 관심 없었던 줄 알았는데 그래도 아빠도 좋아하는구나 이 녀석.


유치원 버스 탑승 장소에서 모인 다른 학부모들과 인사를 나누면서 둘째 출산 소식을 알렸다. 다들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첫째는 엄마가 없어서 침울해하거나, 둘째 이야기에 질투심을 표출하지 않고 즐겁게 놀다가 잘 버스에 타고 갔다. 왠지 아내가 조리원에서 집에 올 때쯤이면 첫째가 훌쩍 철이 들어 있을 것만 같았다.


다시 병원에 돌아가서는 계속 아내와 이름에 대해 의논했다. 작명가분이 보내준 이름 후보는 2개였다. 우리가 생각했던 이름 3가지는 다 탈락했다. 전에 첫째 때는 우리가 생각한 이름도 적절한 한자를 넣어서 포함시켜주었는데, 이번에는 그다지 추천할만한 이름들이 아니라 빠졌고 사주에 가장 잘 맞는 2가지만 꼽았다고 했다.


다행히 우리 부부는 큰 이견 없이 한쪽으로 생각이 일치했다. 부모님들도 이름은 알아서 지으라고 하셨고, 우리가 정한 이름에 반대하지 않으셨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남아있었다. 이름으로 불리게 될 본인과, 4인 가족의 나머지 한 명인 첫째의 의견이다. 물론 아이들은 이름을 짓는 것에 대한 의견을 어른처럼 깊게 생각해서 이야기하긴 어렵겠지만(한 명은 아직 이야기 자체를 할 수 없으니) 반응은 확인해봐야 했다.


우선 하트는 아내가 수유할 때 새 이름을 불러주었더니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고 했다. 한 번에 합격.


첫째에게는 장모님이 물어보았는데 괜찮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도 한번 더 직접 확인하기 위해 저녁에 집에 와서 재울 때 다시 물어보았다. 좋다고 한다. 만장일치로 통과. 땅땅땅!


사람은 이름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반대로 멋있고 대단한 사람의 이름은 조금 특이해도 그냥 멋져 보인다. 아내와 전에 이름을 지을 때 생각했던 것인데 '부진'은 좋은 단어도 아니고 여자 이름 같지도 않지만 이부진이라는 이름은 그 주인 덕분에 귀티 나고 세련된 이름이 되었다. 내가 이건희는 아니니까 이 비유는 적절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하트의 이름이 부끄럽지 않게 잘 키우겠다고 다짐했다.


출생신고하기 전에 마음 바뀌면 말하렴.

이전 04화아기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