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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07. 2022

조리원 입성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14일째

7월 7일(목) 습하고 더운 날씨 같다


오늘은 퇴원하는 날이다. 아침 먹고 옷을 갈아입고 짐을 쌌다. 조리원 짐을 단출하게 싸와서 뭐가 더 필요한지는 조리원에 가봐야 알 것 같다. 마지막 진료를 보고, 상처부위를 소독했다. 내 뱃속에 있던 아이가 이제 세상에 나와 분유도 먹고 응가도 한다는 게 신기하다. 몸무게를 한번 재봤는데 딱 아기 몸무게만큼만 살이 빠져있다. 여기서 10킬로를 더 빼야 하지만 그건 천천히 생각하기로 하자.


방을 정리하고 하트를 인계받았다. 남편이 조심스레 아이를 안고 병원 벤을 타고 조리원으로 향했다. 난 수유를 하면서 여러 번 안아봤지만 남편은 처음 안아보는 아기인지라,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남편은 해봤는데, 안 해본 것 같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그렇지만 다시 하니 내 몸이 기억한다. 수유도 아기 안는 것도 그렇다.


조리원에 들어와 보니 천국이 따로 없다. 물론 유축, 마사지, 수유, 좌욕 등 내일부터 쉴 틈 없이 스케줄이 있을 테지만 그래도 푹신한 침대에서 하루 종일 남이 차려주는 밥을 먹으며 지내는 게 안락하다. 첫째 땐 왜 그렇게 조리원이 우울했을까. 그땐 다 암울했는데 지금의 나는 밝다. 스스로에 기대하는 바가 달라졌기 때문일까. 나는 많이 변했다. 확실히.


조리원은 13박 14일이다. 그동안 내 몸조리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나머지 시간에 티비만 보고 싶진 않다. 휴직 전, 이 휴직을 기다리며 내가 계획한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이 계획을 좀 더 구체적으로 잡고, 당장 실행할 수 있는 것들을 시작해 봐야겠다.


1. 운동으로 몸만들기, 신체적 회복: 30대에 일과 육아로 내 자신을 전혀 돌보지 않았다. 40대를 1년 앞둔 지금부터라도 건강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잘 맞았던 필라테스를 다시 시작하고, 많이 틀어진 내 신체 불균형도 발란스를 맞추고 싶다.


2. 영어 감각 잃지 않기, 언어 능력 유지: 지난 2년간 외국계 회사에 다니며 영어로 고생했다. 지지부진하지만 영어 회화를 꾸준히 트레이닝한 만큼 앞으로의 9개월도 영어를 꾸준히 노출하고 싶다.


3. 운전 연수받기, 이동적 독립: 처녀 땐 꽤 차를 몰았는데, 결혼 후부턴 운전대에서 손을 떼었다. 교통사고까지 경험한 뒤론 더 도로가 겁이 난다. 다시 운전하고 싶다. 남편과 싸우며 받는 주행 연습이 아니라 제대로 전문가에게 주행 연수를 받고 혼자서도 운전을 하고 다닐 거다.


4. 브런치 북 & 우리 가족 독립 출판: 육아휴직 일지와 제주도 한 달 살기를 주제로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내고 나를 표현할지, 더 고민이 필요하다.


5. 가족을 위해 요리 배우기: 아이와 남편, 우리 가족의 건강을 위해 요리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난 전혀 요리를 하지 않는 사람이다. 가공식품 덥히거나 밀키트 옮기는 수준이다. 그러나 아이 편식이 심해지고 남편도 나도 건강한 몸을 만들기 위해 건강한 식단은 필수이다. 사랑하는 우리 가족을 위해 요리를 배워야겠다.


우선 이 정도이다. 짧은 9개월의 휴직. 두 아이를 돌보는 것만 해도 시간이 잘 갈 테지만 생각하기 나름이다. 남편이 육아휴직을 내고, 우리 부부의 공동 육아 시스템 안에서 최대한의 효율을 내고 싶다. 이러다 우리 남편처럼 나도 계획충이 되는 게 아닌가 싶다. 그것 또한 좋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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