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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08. 2022

엄마가 보고싶은 너에게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14일째

7월 7일 목요일 소나기


벌써 산부인과에서 퇴원해 산후조리원으로 가는 날이다. 어젯밤에 집에 와서 첫째를 재우고 잤던 나는 아침 일찍 필요한 물건들을 챙겨서 다시 병원으로 갔다. 8시쯤 도착하니 아내는 아침식사 중이었고 보호자용 아침식사로 토스트가 나와 있었다. 남편이 출산 이틀 만에 아내를 혼자 두고 집에서 자고 올 수 있는 것은 아내가 경산모이자 자연분만을 해서 회복이 빠르기에 가능한 일이지만 첫째를 잘 케어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첫째는 아직 불과 다섯 살이다. 유치원도 다니고 제법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그래도 아직 아가다. 동생 낳으러 갔다고 설명은 해줬긴 해도 엄마 아빠가 다 동생한테만 붙어있다고 서운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실은 우리 첫째는 돌 때부터 자기 방에서 혼자 잘 정도로 수면 분리가 잘 되어있는 편이었다. 하지만 세상을 다 줘도 엄마가 더 좋을 다섯 살 아이에게 17일이나 엄마와 떨어져 지내라는 것은 고문이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어제도 잘 때는 엄마 안 찾고 잘 자는가 싶었는데, 한밤중에 깨서 엄마를 찾기에 할 수 없이 전화 스피커폰으로 연결해주었고 아내가 자장가를 불러주자 다시 잠에 들었다.


병원에서 아침 진료와 퇴원을 위한 수속을 완료하고 병원 서비스 벤을 타고 조리원에 입소했다. 조리원은 방이 좁다는 점을 빼고는 모두 만족스러웠다. 원장님은 베테랑 같았고 신생아실도 잘 세팅되어 있었다. 실은 첫째 때는 산후조리원이 그렇게 편안하지 않았다. 시설은 그곳이 더 좋았던 것 같은데, 갓난아이를 돌보는 것이 처음이었던 그때의 우리는 모든 것에 자신이 없고 서툴렀다. 모자동실 시간은 두려웠고 모유수유는 하면 할수록 어려웠다. 아내는 모유수유 콜이 오면 어두운 표정으로 방을 나서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우리는 마치 장롱면허에서 다시 몇 년 만에 운전을 시작한 사람처럼 첫째를 키웠던 경험을 더듬더듬 기억해내며 모유수유나 모자동실 시간도 그럭저럭 보낼 수 있었다. 물론 둘째가 더 순한 기질이고 수유도 더 잘하는 아기라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조리원에 있는 우리의 마음가짐은 달라졌다. 심지어 이번 조리원은 모자동실 시간이 오전과 저녁 2번이고 시간도 더 길다. 하지만 뭐, 내 애는 원래 내가 키우는 것이니까. 첫째 때처럼 초보인 우리보다 전문가들에게 아기를 맡겨두고 싶은 마음은 아니었다.


코로나 때문에 산후조리원에 남편이 계속 같이 있을 수는 없었다. 입소 첫날이라 아내를 좀 더 챙겨주고 아기도 조금 더 보기 위해 저녁식사 시간까지 같이 있다가 집으로 향했다.


집에 오니 첫째가 정말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아이를 봐주시던 장인 장모님이 집으로 가시고 첫째에게 엄마를 볼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었다. 아이패드로 페이스타임을 연결해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넘버블록스' 놀이를 했다. 비록 화면으로만 보이지만 엄마랑 오랜만에 놀이 시간을 갖고 아이의 기분도 한껏 좋아진 것 같았다. 며칠간 아이와 별로 놀아주지 못했던 나도 같이 시간을 보냈다. 아이가 좋아하는 놀이도 하고 이번 기회에 미리 사놨던 그림일기를 그리는 시간도 가졌다.


자랑을 하자면 우리 첫째는 여러 가지 학습 능력이나 기억력이 좀 좋은 편이다. 두 돌 전에 숫자와 알파벳을 다 알았고 세돌 전에 한글을 읽을 수 있었다. (기역니은을 읽은 게 아니라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 그래서 이번에 산 그림일기장은 초등학생용이지만 도와주면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도전하게 됐다. 아이는 그림 칸을 반 나누어서 반은 자기가 그리고 반은 내가 그리게 해 주었다. 이상하게 색깔로 가득 칠한 그림을 그리기에 이게 뭐냐고 물으니 '이불 놀이'란다. 나는 엄마와 화상으로 넘버블록 놀이했던 것을 그려주었다. 서툴지만 글씨로 일기도 썼다. 엄마가 없으니 아빠가 첫째 마음속 1등이 된 것 같아 우쭐한 기분이었다.


그치만 첫째가 가장 엄마를 필요로 하는 때는 뭐니 뭐니 해도 잘 시간이다. 양치질부터 우유 먹기, 쉬하기, 책 읽기 등 잠잘 준비를 마치고 굉장히 졸려하는 와중에도 아이는 엄마를 보고 싶어 했다.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한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이럴 줄 알고 낮에 조리원에서 엄마 목소리를 몇 개 녹음해왔지. 녹음해온 멘트와 자장가를 틀어주자 아이는 어떻게 엄마 목소리를 가지고 왔냐고 물으며 점차 잠에 빠져들었다.


이제 13박 14일의 각개전투의 서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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