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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09. 2022

유축 지옥과 단유 고민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15일째

7월 8일(금) 모르겠음


어제 밤새 잠을 설쳤다. 분만 후 후유증으로 회음부 등 여러모로 불편한데 오로까지 신경 써야 하니, 치질 수술받은 후 생리양 많은 밤 같은 느낌이다. (그런 경험은 한적 없지만 아마 비슷할 듯하다.)


어제처럼 마냥 조캉스라고 부를 수 없는 오늘이었다. 조리원 침대와 이불은 안락하지만 숙면에는 소용이 없었다. 나는 밤새 뒤척이다 새벽 수유 콜을 받았다. 6시 30분이었다. 밤중 수유는 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새벽 수유는 예외로 받아들여진 것 같다. 내가 수유에 그간 꽤 적극적이었어서 조리원 원장님이 나를 깨운 듯하다.ㅠ


목욕을 한 하트가 내 방으로 왔다. 막상 만나면 사랑스럽기에 쓰다듬고 안아주고 젖을 물렸다. 젖을 빠는 하트를 바라보며 난 거의 졸고 있었다. 하트는 내 젖만 물면 곰방 잠에 들고 만다. 양쪽을 다 먹긴 늘 어렵다. 엄마 냄새도 나고, 편안해서 그런 듯하다. 그렇지만 지금 내 모유가 펑펑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가슴 전체의 터널이 군데군데 막혀있다 보니, 하트가 젖꼭지를 통해서만 젖을 빨아대면 가슴 가장자리에 모여있는 모유가 점점 쌓여 가슴이 부풀어 오르고 젖몸살이 생긴다.


하트를 돌려보내고 유튜브를 찾아 혼자 할 수 있는 마사지를 해봤다. 샛노란 초유가 뚝뚝 흐른다. 아까워서 다시 마사지를 하고 열심히 유축을 했다. 손목과 가슴이 얼얼하다. 한번 이 과정을 하는데 1시간이 그냥 흐르는데 유축을 3시간 간격으로 해야만 그나만 가슴이 안 아프다. 마사지실 실장님은 초유라 아깝고 가슴 상태가 나쁘지 않다며 열심히 수유와 유축할 것을 권장했다. 문제는 하트가 2.7킬로로 태어나 조리원 입실 시 2.59킬로였던 미숙아에 가까운 상태라는 거다. 황달도 있어서 잘 먹는 게 중요하다 보니 분유를 잘 먹여야 하는 상황이다.


내 젖양은 첫째 때보다 많아졌다. 하트와 병원에서부터 교감을 해서 그런 듯하다. 첫째 때 첫 유축 양이 20ml였다. 여기선 80ml이다. 젖양이 많아진 만큼 유축과 수유도 활발해져야 하는데 하트 컨디션 상 분유가 필요하다 보니 내 초유를 반가워하지 않는 듯하다. 모유는 분유보다 변도 자주 하게 된다. 살이 덜 찔 수밖에 없다.


오늘은 하루 종일 단단해지는 가슴을 혼자 풀어주고 유축하고, 하트를 달래기 위해 툭하면 오면 수유 콜(끼니 기능이 아님)을 소화하느라 정신이 한 개도 없었다. 밥-수유-유축-셀프 마사지-밥-수유-유축-셀프 마사지로 꽉 차있었다.


그 와중에 저녁엔 자꾸 남편과 첫째가 영상통화를 시도했다. 내 유축하는 모습을 첫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통화에 제한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중엔 좀 짜증도 났다. 첫째가 엄마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알겠지만, 가슴과 아랫도리가 동시에 불편하다 보니 나도 앞에 뵈는 게 없어지고 있다. 그리고 쉬고 싶어도 조리원 스케줄로 쉬지를 못하는데, 자꾸 나를 옆에 화상으로 연결하면 난 휴식도 유축도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첫째가 보고 싶고 궁금한 마음도 있지만 지금 내 상태는 분만의 고통이 연속되는 느낌이다. 철없는 아들이야 모를 수 있다만, 이 과정을 다 알고 있는 남편에겐 조금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 대체 나에게 뭘 더 기대한단 말인가?


제왕절개만 후불이 있는 게 아니다. 수유와 유축, 젖몸살, 오로 등등. 출산 이후의 고통은 몸의 고통뿐 아니라, 자괴감과 굴욕감을 동반한다. 그걸 대놓고 말하는 것 역시 굴욕적이기에 공공연히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다. 출산의 고통은 출산 이후에도 끝나지 않는다.


가슴이 아파 너무 힘들어하는 날 보고 조리원 원장님이 양배추 크림을 몇 개 주었다. 젖몸살 완화 크림이다. 수유나 유축 중 힘들 때 바르면 좋다고 한다. 다만 이 크림을 계속 바르면서 수유나 유축을 중단하면 젖이 마른다. 순간 단유를 떠올렸다. 집에 가서도 이 사이클을 반복할 수 있을까? 다섯 살 남자아이인 첫째 앞에서 내가 계속 수유나 유축을 할 수 있을까? 뭐라고 설명을 해줘야 할까? 아니, 그런 내 모습을 그냥 스스럼없이 보여주는 게 괜찮을까? 너도 이렇게 컸다고 설명하며? 그게 자연스러운 거니까? 오늘 밤, 내 마음이 불편하다. 어제까지 자연의 신비라 느껴졌던 모든 것이 다 거추장스럽다. 난 또 유축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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