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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n 27. 2022

빙글빙글 돌아가는 우리들의 하루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1일째

6월24일(목) 하루 종일 습하고 우중충


아이를 재우다 같이 잠에 빠져들 때, 남편이 문을 열고 나를 깨운다.

"여보, 일기 쓰고 자."


자다가 봉창을 두들겨 맞은 기분이다. 잘 때 건드리면 정말 신경질이 나지만, 약속은 지켜야 한다.

맞다. 우리 같이 매일 일기 쓰기로 했지, 휴직일기.


나는 어제, 6월 23일부로. 남편은 오늘 부로. 우리 부부는 둘째의 출산을 앞두고 같이 육아휴직을 썼다.

휴직기간을 기록하는 것은 휴직을 앞두고 우리 부부가 계획한 일이다.

계획은 칼같이 지켜야 하는 우리 남편 성격 상, 첫날부터 아내가 규칙을 어기고 잠에 드는 걸 허락할 리 없지. 빨리 일기를 쓰고 다시 자고 싶은 마음으로 노트북 앞에 앉았다.


오늘의 시작은 정말 어처구니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시계는 8:58을 가리키고 있었다.

어??? 뭐지???


첫째 등원 시간은 9시 5분이다. 유치원 버스가 아파트 중앙 놀이터를 떠나는 시간.

온 가족이 눈을 8:58에 떴다는 건, 오늘 유치원 지각 확정이라는 거다.

게다가 오늘은 동네 육아 친구들과 등원 후 브런치 약속이 예정돼 있는 날이다. 아이 등원시키고, 엄마들과의 브런치 모임은 내 로망이었다.


이미 아이는 일어난 모양이다. (누워서 옹알이를 하고 있다. 그럼 엄마를 깨워야지 아들아???)

허겁지겁 남편을 깨우고 A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어떡하죠? ㅠㅠ 지금 일어났어요"

늘 평정심을 유지하는 A 엄마가 차분히 조언해준다. "9시25분 차 있어요, 서둘러 준비해 나가세요!"


오, 이런 구세주를 보았나. 남편과 나는 첫째를 빨리 깨우고 준비를 시켰다.

나도 세수만 대충하고 옷을 챙겨 입었다. 허겁지겁 온 가족이 나가니 9시25분 차도 이미 도착해 있는 상태.

아이를 겨우 태워 보내고, 그렇게 첫 등원을 마무리했다.

오랜만에 엄마랑 같이 (+ 아빠와는 첫 등원이다) 유치원 버스까지 등원을 한 아이는 매우 신이 난 듯하다.


그렇게 아이를 태워 보내고, 육아 동지 2인이 기다리고 있는 동네 카페로 향했다.

어린이집부터 같은 반이었고 지금도 같은 유치원을 보내는 A엄마와 B엄마가 반갑게 나를 맞아준다.

마치 고향 친구를 만나듯, 가슴속 쌓여있던 응어리진 육아와 출산에 대한 이야기보따리를 풀기 시작했더니 어느새 4시간이 훌쩍 갔다.


와, 이런 게 힐링이네. 임박해 있는 둘째 출산부터, 아이 둘 키우기, 훈육과 교우관계, 교육 문제 등

남편과의 토론으로 해결되지 않았던 모든 고민거리와 응어리들이 술술 풀린다.

나, 이런 육아 수다가 정말 절실했던 거였다.


워킹맘으로 살아온 지난 4년. 이렇게 여유롭게 '육아'라는 주제 하나 만으로 누군가와 얘기를 나눠본 게 얼마만인가 싶다. 첫째 출산 후엔 동네에 이렇다 할 육아 동지를 사귀기도 어려웠고, 돌쟁이로 키워내기까지 '생존 육아'를 해왔다면, 지금은 조금 더 여유로워진 것 같다.


이런 게 바로 프로페셔널 '엄마'라는 걸까? (움하하하하)


첫날부터 아이는 지각할 뻔했지만, 나는 맘 속 깊이 충만한 여유와 나에게도 '동지'가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며 아이의 하원을 맞게 됐다.


하원 후도 만만치는 않다.

아이와 놀이터에서 노는 것은 여러 가지 스킬이 요구된다.

다른 아이들과 만족스럽게 상호작용 하게 적당히 내버려두되, 아이의 요구사항도 적당히 들어줘야 한다.


어울려 노는 친구 몇몇이 장난감을 가져온 것을 보고, 자기 장난감도 가져다 달라는 아들.

마침 날씨가 덥길래 장난감 핑계로 난 들어와 쉬고, 아빠를 내려 보냈더니 성에 안찼는지 곧 전화가 온다.

다른 장난감을 가져다 달라는 것. 그리고 "엄마가 와!" 라는 주문.


그래, 엄마가 쉰다고 너무 기대했겠지. 그러니 엄마가 비록 38주의 만삭이고 날씨가 30도를 넘는 습습한 여름 한낮이라 해도, 아빠도 외할머니도, 외할아버지도 다들 얼굴을 비추며 너의 근황을 궁금해한다 해도, 너에겐 엄마가 필요하겠지.


어차피 일주일이다. 이렇게 너와 시간을 보내주는 것도.

그 후엔 산부인과와 조리원에서의 격리생활이 시작될 거고, 내가 힘든 만큼 첫째의 상실감과 박탈감도 어마어마할 거다.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아이와 놀이터에서 놀고, 집에 와 저녁을 준비해 다 같이 먹고, 내일 영어 놀이 센터에 갈 숙제를 같이 하는 것도.


비록 숙제하기 싫다는 말에 욱해서 샤우팅 1번, 자기 직전 어둠 속에서 휘두르는 너의 발에 내 코뼈가 휘어질 듯 아프게 부딪혀 제발 주의하라고 샤우팅 2번을 시전하긴 했지만서도.


난 괜찮고 지금 이 시간이 정말정말 행복하다.

오늘은 나의 해방 1일째니까. 지금은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다.

앞으로의 내가 육아(휴직) 감옥에 갇힐 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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