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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n 27. 2022

토요일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2일째

6월 25일 토요일 흐림


얼마 전 드라마를 보다가 아내에게 물었다.

"여보는 무엇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어?"


"사람들의 시선. 여보는?"

아내가 대답하며 물었다.


"토요일을 기다리는 삶"

.

.

.

휴직을 시작하고 첫 번째 맞이하는 주말이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 하루 일과를 가만히 생각해 보면서, 문득 내가 휴직을 하기 전과 후를 비교했을 때 가장 비슷한 하루를 보내는 것은 바로 토요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내가 토요일을 기다리는 삶에서 해방되고 싶었던 것과는 별개로 토요일은 많은 사람에게 여전히 특별한 날이었기 때문이다.


일단 토요일에는 아이가 유치원에 가지 않는다. (대신 토요일에는 잉글리시에그라는 영어 센터 수업을 간다) 그렇다고 부모가 평일에 시간이 많아졌으니 원래 유치원 끝나고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노는 시간을 빼앗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영유아 검진이나 아이의 안과 검진도 토요일에 하게 됐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장인 장모님이다. 장인어른은 오래전 은퇴하시긴 했지만 평일에 소일거리 겸 출퇴근하시는 일이 있다. 아이 영유아 검진을 마치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장인어른께 전화가 왔다. 경기도 모처에 무슨 창고용지가 싸게 나왔는데 오늘 보러 가자는 거였다. 아내와 아이는 오후에도 갈 데가 있어서 나 혼자 모시고 가기로 했다.


토요일이라 차가 더 막혔다. 왕복 3시간 운전. 경기도인데...


물론 오가는 차 안에서의 대화는 즐거웠고, 비록 결과는 허탕이었지만 임장을 갔다는 사실 자체도 만족스러웠다. 아니 그냥 뭐 '땅을 보러 다니는 사람'이라는 수식어가 괜스레 으쓱하달까. 아무튼 갔다가 집에 오니 이미 5시가 넘어 저녁시간이었다. 아내와 아이를 불러내 다섯 식구가 같이 외식을 했다.


저녁식사 후에 집 근처 놀이터에서 소화도 시킬 겸 시간을 보냈다. 놀이터는 사실 어른이 보기에는 별것도 없어 보이는데 애들은 마냥 즐거운지 신기하다. 같이 놀 친구가 없어도 어른들이 조금만 맞춰주면 깔깔대며 바쁘게 뛰어다닌다. 이렇게 하릴없이 한가하게 시간을 때우다 보니 어느새 7시 반. 평소보다 너무 늦어졌는데도 이상하게 나도 마냥 즐거웠다.


만약 한 달 전, 아니 일주일 전의 나였으면 어땠을까?


나의 일주일 중에 가장 '귀하신 몸'인 토요일에, 무려 3시간 동안 고생고생 운전만 하다가 허탕을 치고, 오늘처럼 딱히 뭐 했다고 할만한 대단한 일기 거리도 없이 지나갔다면? 보통 특별한 토요일을 만들기 위해 스케줄을 욱여넣던 나였으니, 아마도 아주 높은 확률로 나는 괜히 예민한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이제 당분간 토요일을 기다릴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됐다.

아니 실은 어쩌면 토요일보다 다음 주 월요일을 더 기다릴 수도 있다.

토요일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 되자 세상이 더 평온해졌다.


휴직이 끝나면 다시 토요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인생의 목표는 다시 한번 선명해졌다.

'토요일을 기다리는 삶으로부터 해방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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