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내누 Jun 27. 2022

영유아검진 후 우울해지다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2일째

6월25일(토) 하루 종일 후덥 찌근


아침이다. 9시가 되도록 일어나지 않는 남편과 아이. 

8시부터 깨워야 하는데, 깨워야 하는데 생각하다 결국 9시가 넘어섰을 때쯤 남편과 아이를 깨웠다. 

어느새 남편이 아이방에서 자고 있다. 너무너무 사랑스러워서 옆에 누웠을 테지만, 첫째는 아빠가 옆에 있으면 싫어한다. ㅋㅋ


오늘은 영어놀이 센터에 가는 날. 식빵과 과일로 대충 아침을 때우고, 아이와 집을 나선다. 

오늘도, 덥다. 남산까진 아니고, 동산만 한 만삭의 배로 뒤뚱뒤뚱 걸어 다니는 내 모습은 흡사 펭귄 같다. 

내 체온과 뱃속 둘째의 체온이 합쳐져서인지, 유난히 더위를 많이 타게 된다. 첫째 때도 둘째 때도 6월에 맞는 37~39주가 버겁다.


그래도 이 시간을 남편에게 양보하지 않는 것은 육아 동지인 첫째 친구 A의 엄마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수다와 고민을 털어놓으며 내 든든한 육아 동지가 된 A 엄마는 오늘도 첫째와 둘째를 데리고 센터에 오느라 고생이 많다.


영어센터에 다닌지는 약 1년이 됐다. 제법 고가의 영어 교재를 구입하고, 일주일에 한 번씩 센터를 방문해서 영어놀이를 한다. 첫 기대 및 포부와는 다르게 아이도, 부모인 우리들도 더듬더듬 진도를 따라가느라 바쁘다. 일주일에 40분인 수업과 열 장 남짓한 플레이북이 전부인데, 이 정도의 사교육도 챙길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오늘은 수업 후 오후 보충수업도 잡혀있다. 지난주 수업을 제꼈기 때문이다. 아이 생일을 맞아 미리 세 가족 레고랜드를 다녀오느라 지난주 토요일 수업은 가지 않았다. 오전 11시와 오후 3시의 수업 스케줄을 맞추려면 그 외 다른 스케줄은 잡을 수가 없다.


오전 수업을 마친 뒤엔 영유아검진을 받았다. 48개월 아이는 지금까지 몇 번의 영유아 검진을 받아왔다. 첫 2년 동안은 늘 95-97%의 몸무게와 키를 자랑했다. 아이는 부모와 달리 남다르게 우량했고, 소아과 선생님이 과체중을 염려할 정도였다.


지금의 아이는 편식쟁이라 점점 마르고 있고, 성장 속도도 예전과 비교할 때 더뎌졌다. 키는 평균보다 조금 크고, 몸무게는 딱 중간이다. 영어든 키든 아이 성장의 속도가 예전보다 더뎌지면 부모는 초조해진다. 그냥저냥 잘 크고 있는 건데도 예전과 비교할 때는 뭔가 부족한 것만 같다. 그런 부모의 못난 모습이 티가 나면 안 되는데, 아이 앞에서 자꾸 아이의 성장에 대해 말하고, 남과 비교하게 된다.

 

오늘 특별히 속상했던 건 시력 검사였다. 아이 시력이 나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영유아검진에서도 0.2가 나오길래 늘 가던 안과를 다시 방문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우선 두고 보자던 의사 선생님은 이제 '개입'을 해줄 때라고 말했다. 만 4세가 됐으니, 안경을 씌우자는 거다. 아직까지 어린이라고 부르기에도 이른 영유아인 첫째에게 '안경'이라니. 길에서 이만한 아이가 안경 쓴 걸 본 적이 있었던가? 나도 모르게 또 세상의 틀 안에서 첫째의 변화를 비교해 잣대질을 하게 된다.


안경 쓰는 문제는 잘 생각해보고 다시 결정하기로 했다. 나 역시 어렸을 때부터 눈이 나빴고, 학교가기도 전에 안경을 썼다. 그냥 안경도 아닌, 뺑뺑이 안경이었다. 안경으로 인해 내 어렸을 적 자존감이 얼마나 영향을 입었는지는 말할 것도 없다. 이십대 후반에 렌즈삽입술을 받은 뒤, 광명을 찾기 전까지 '뺑뺑이 안경'과 뿌연 세상은 나의 아킬레스 건이었다.


내 유전자를 쏙 빼닮은 첫째는 눈이 나빴다. 나 때문이니까, 아이 잘못은 하나도 없는 거니까. 속상하고 미안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안과의 경험이 꽤 재밌었는지 첫째는 철없이 집에 가서 안경을 만들자고 한다. 시력 검사할 때 썼던 검사용 안경이 신기했나 보다.


"혹시 유치원에서 안경 쓴 친구 있니?"

"아니, 없어."

"처음으로 유치원에서 안경을 써보는 건 어때? 굉장히 멋질 것 같지?" 

".... 모르겠어."


안경 쓰는 문제에 대해 아이는 좋지도 싫지도 않은 반응이다. 생각해보니 지금 아이 앞에서만 겉으론 티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지만, 병원에서의 나의 속마음은 들통이 나버렸다. 아이 앞에서 의사 선생님에게 '꼭 안경을 써야 하는지? 얼굴 성장에 문제가 되진 않는지, 이렇게 어릴 때 안경을 쓰면 관리를 잘 못해 생활하다 다칠 수도 있진 않은지?' 등등 여러 불안과 걱정을 아이 앞에서 이미 내비치지 않았는가.


이미 엄마 마음을 알아챘다면 안경 쓰는 것에 대해 긍정적일 거라 생각하긴 어려울 것 같다. 정말 우울해진다.


뒤뚱거리며 다시 집으로 와 나는 소파에 벌러덩 드러누워버렸다. 그리고 에어컨을 킨 채 잠에 들었다. 아이는 내 옆에서 넘버블럭스 장난감으로 혼자 잘 놀면서 가끔가다 나에게 '시금치 팬케이크 드세요' 하고 넘버블럭스로 만든 요리를 가져다주었다. 잠결에 "고맙습니다, 냠냠" 하고 다시 누워 잠들던 나는 혼자 놀아주는 아이에게 무척이나 고마웠다.


휴직 2일 차, 첫 토요일의 오후는 그렇게 무덥고 복잡하게 엉켜 지나갔다. 

엄마로서의 미안함도 나를 일으켜 세울 순 없었다. 무거운 배처럼 내 마음도 무겁게 소파를 짓눌렀다. 

작가의 이전글 토요일을 기다리지 않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