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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n 27. 2022

행복의 기둥들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3일째

6월 26일 일요일 흐림


나는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고 믿는다. 행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자주 고민해왔고 행복지수를 이론이나 공식처럼 만들어보기도 했다. 거창하게 이론을 만들지 않더라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행복의 기둥들이 많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즉 예를 들면 행복을 느끼는 요소가 회사일과 자녀 딱 2가지인 사람은 일이 잘 안 되거나 힘들고 자녀가 속을 썩인다면 기둥 2개가 흔들리고 금세 다 무너져버리고 말 것이다. 기둥의 크기나 두께는 다르더라도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요소들이 여러 가지라면 몇 개가 흔들리더라도 충분히 버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하루는 나를 지탱하던 행복의 기둥들을 확인할 수 있는 날이었다.


우선 오늘 오전에는 아내와 아이와 함께 아차산에 갔다. 숲 놀이터에서 놀다가 새로 짓는 어린이 숲 도서관도 가보고 데크길로 등산 겸 산책을 했다. 그냥 소소하게 웃으며 데크길을 오르내리다가 폭포에서 사진도 찍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갔다 와서도 내가 오랜만에 요리 솜씨를 뽐낸 메뉴들을 아이와 아내가 맛있게 먹어주었다. 뭐니 뭐니 해도 내 행복의 가장 큰 기둥은 아내와 아이(들)이다.


오후엔 집 청소도 하고 잠깐 낮잠도 자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5시부터는 야구를 듣기 시작했다. 참고로 나는 LG트윈스 팬이다. 야구를 '보는'것이 아니라 '듣는' 이유는 한쪽 귀에 에어팟을 꼽고 듣기만 하기 때문이다. 사실 야구는 한 경기를 3~4시간 동안 하는데 매일 그걸 다 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생각해낸 방법이 중계를 한쪽 귀로 흘려듣다가 중요할 때만 잠깐씩 보는 거였다. 이 정도 건전한 취미는 인정해주겠다는 아내 덕분에 이런 방식으로 매일 중계를 듣는다. 물론 한쪽 귀로 중계를 들으면서도 나머지 할 일들은 잘 해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다가 저녁을 먹으러 처가댁에 갔다. 장을 봐왔다고 고기랑 요리를 해줄 테니 같이 먹자고 하셔서 가게 됐다. 아이는 친가 외가 막론하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다 좋아한다. 하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그거보다도 더 많이 아이를 좋아하신다. 이렇게 가족과 건강하고 화목한 시간을 보내는 것도 행복의 큰 기둥이 된다.


집에 와서 아이를 재울 준비를 하다 보니 어느새 LG도 이겼다. 사실 내 인생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지만 기분이 안 좋은 날도 야구만 이기면 좀 행복해진다. 올 6월에는 LG트윈스가 승률 7할에 달할 정도로 잘하고 있다. 행복할 확률 70%다.


이런 것들 말고도 나에게는 행복의 기둥들이 몇 개 더 있다. 일단 주식과 재테크. 물론 6개월간의 하락장이 있었지만 최근 반등하는 분위기다. 그리고 유튜브. 영상 하나가 떡상해서 40만 뷰를 찍으면서 대박이 나는가 싶었는데, 요즘엔 뜸해지고 구독자 증가 추세도 6천 명에서 속도가 느려졌지만 그럭저럭 꾸준하다. 이것들도 작년 말에, 혹은 올해 초에는 나를 많이 행복하게 해 주었던 녀석들이다.


힘들고 지친 날에 한두 개만 버텨줘도 그럭저럭 행복했는데, 오늘처럼 모든 행복의 기둥들이 받쳐주면 기댈 곳이 많아서 든든하다. 당분간은 계속 이런 나날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입꼬리가 올라간다.


그리고 오늘은 일요일 밤이다. 보통 다음 주 스케줄을 생각하며 마음이 무거워지고 한숨을 짓기 일쑤인 날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다음 주 스케줄은 다 기대되는 일들 밖에 없다. 피부과. 옷 쇼핑. 청와대 관람. 아내 친구의 방문. 한의원. 미용실. 가족사진 촬영......물론 둘째가 태어나기 직전의 지금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한가한 나날이겠지.


그래도 좋다. 현재를 즐기자. 카르페디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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