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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10. 2022

말동무를 찾아서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17일째

7월10일(일) 날씨: 폭염이었다고 함


어젯밤 새벽까지 잠을 설쳤다. 조리원 불평을 했더니 남편이 폭발했다. 내 딴엔 조리원이 좀 이상하고,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이 있어서 그런 건데 남편도 하루가 고되고 힘들었나 보다. 그렇다고 뭐 그렇게까지. 쳇. 난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고 그러길 바라는데 남편은 늘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한다. 남편 입장에선 대안이 없다고 여겨지면 이 대화 자체가 소모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입장에선 내 이야길 들어주고 공감해 주는 것만으로도 문제의 원인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풀리기 때문에 하는 말들이다. 그치만 그는 성격 상 그것이 어렵다고 한다. 뭘 어떻게 해달라는 게 아니라, 그냥 이야기를 들어달라는 것인데.


나도 내 나름 섭섭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곰곰이 생각할수록 지금 조리원을 박차고 나갈 게 아니라면 조리원의 단점만 꼬집어 생각할 게 아니라 내 마음을 긍정적으로 돌리는 게 맞겠다 싶었다. 새벽에 불안할 때마다 베베캠을 보면 둘째는 새근새근 잘 자고 있었다.


이런저런 생각하다 세네 시간 잤나. 새벽부터 신생아실 아이들이 다 같이 울어서 잠에서 깼다. 7시였다. 둘째를 데리고 방으로 와 수유를 했다. 밤새 젖이 탱탱 불어있었다. 둘째도 배가 고팠는지 옹골차게 내 젖을 있는 힘껏 빨았다. 둘째를 배불리 먹이고 싶은 마음보다 내 가슴을 치유시켜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수유를 하고 싶었다. 둘째에게 직수로 젖을 먹이면 가슴의 멍울이 사라지는 기분이다.


그치만 아직도 2.7kg 미니미인 둘째에겐 미숙아용 분유를 줘야 빨리 살도 찌고 좋다는 게 조리원 원장의 입장이다. 모유를 먹으면 응가를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이다. 내가 단유를 고민한 걸 알고 있는지라 오늘은 원장이 단유도 괜찮다, 요새 분유 잘 나온다며 단유할 것도 은근 권유를 했다. (결국 오늘은 쭉 분유만 주기로 했다. 변이 좀 괜찮아질 때까지는 직수는 안 하기로 했다. 이게 아이를 위해 최선인지 조리원에게 편한 선택인 건지 솔직히 확신은 안 들지만 그러기로 했다.)


난 첫째 때 젖이 모자라 울면서 유축을 하고, 첫째가 젖꼭지를 잘 못 물어서 울면서 수유를 했다. 그래서 젖양도 많고 직수도 잘하는 둘째에게 모유를 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결국 차선으로 유축을 열심히 하고 있다. 이걸 다 얼려두면 언젠가 둘째가 먹을 날도 오겠지? (나의 초유는 아이가 잘 먹었겠지? 제발 그랬길 바란다.)


아침에 남편에게 먼저 연락을 했다. 내 딴엔 먼저 화해의 제스처를 보낸 거다. 남편은 병원에 입원 중인 내 친오빠를 대신해 엄마, 아빠 모시고 첫째와 우리 친할머니의 성묘를 다녀와야 한다. 어제도, 오늘도 첫째와 고생하는 남편에게 수고하라는 말도 건넸다.


아침부터 하트 수유를 하고, 밥을 먹고 좌욕을 한 뒤 모자동실 시간이 다시 찾아왔다. 이제 둘짼 모유수유를 할 수 없으니 대부분 분유 먹이고, 안아주고 사진 찍고 눈 맞추고 트림시키고 등등. 하면 끝난다. 모자동실 시간 후, 문제의 청소부가 왔다. 청소하라고 하고, 방에서 나갔는데 청소시간이라 나와있는 산모들이 많길래 서로 통성명을 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내가 조리원에 대해 느끼는 여러 가지 부분에 대해 서로 공감도 하고, 집에 있는 첫째 이야기도 하고, 젖몸살 이야기도 하고 수다를 떨다 보니 기분이 나아졌다. 이들은 나보다 여기 먼저 왔고 대부분 다음 주에 퇴실한다. 퇴실 전까지만이라도 얼굴 마주칠 때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딱히 뭐가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한결 기분이 나았다. 오후에도 공용공간에 갔더니 파라핀을 하고 있는 산모들이 있어 친한 척을 하며 같이 파라핀을 했다. (촛농에 손을 담그는 것 같았다. 근데 그 뜨거움을 참고 해봤더니 손이 시원하고 좋았다! 거참 신기할세)


말동무가 필요했던 것 같다. 남편이 조리원에 가져다줬던 귤 박스에서 귤을 두 개씩 꺼냈다. 나름 아껴먹고 있는 귤이었는데 새로 사귄 친구들에게 2개씩 나누어줬다. 여러분, 이 귤 먹고 나와 이야기 좀 더 나누어줘요. 조동 모임까진 바라지도 않아요. 단 며칠만이라도 단 말동무가 필요하답니다. 내 마음속 바람이 잘 전달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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