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18일째
7월 11일 월요일 소나기
예전 일기들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상당히 계획적인 스타일이다. 하지만 이런 '계획충'의 최대 단점은 바로 계획대로 되지 않았을 때 스트레스가 생긴다는 점이다. 오늘이 바로 그랬다.
월요일 아침은 유치원 등원 시 챙겨줄 것이 많다. 오늘은 거기에다 아침부터 오후에 소나기가 올 수 있으니 우산을 챙겨달라는 공지를 받고 챙길 것이 하나 더 늘었다. 만반의 준비를 갖춰서 유치원 차에 태워서 보내고 집에 와서 오늘 예정된 스케줄을 곱씹으며 준비를 하던 찰나, 유치원에서 다시 알림장이 왔다. 아뿔싸, 실내화를 안 넣었던 것이다. 참고로 유치원 실내화는 금요일마다 집으로 보내면 주말에 세탁을 해서 월요일에 다시 가방에 넣어서 보내는 시스템이다. 10시까지 갖다 준다고 회신하고는 얼른 준비하고 부리나케 자전거를 타고 유치원으로 실내화를 배달했다. 뭔가 꼬인 건 이때부터였을까.
그 이후 방문한 아파트 주변 스포츠센터에서 청천벽력 같은 말을 듣게 됐다. 수영 강습이 마감이라는 거다. 심지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든 타임이 다 인원이 꽉 차고 대기까지 걸려 있다고 했다. 아무리 여름이라도 그렇지. 무슨 다 수영만 하는 사람들만 모인 동네인가? 어쩔 수 없이 10시 타임에 대기 3번을 걸어두고 왔다.
사실 휴직을 하면서 반드시 하겠다고 다짐한 것이 규칙적인 운동이었다. 아니 그냥 운동이 아니라 수영을 하기로 결심했었다. 거의 매일 정해진 시간에 1시간 정도만 하면 되고, 몸에 무리가 가지 않으며 오히려 신체균형이나 지구력에 도움이 되고, 날씨의 영향도 받지 않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할 뿐만 아니라 혹시 언젠가 물에 빠진다면 생존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운동. 아...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다 수영을 하는 거였다.
12시에는 예매해둔 영화 <탑건:매버릭>을 봤다. 숲의 공기를 마시며 볼 수 있는 '씨네 앤 포레' 관이었다. 관객석 숫자가 아주 적고 소파 같은 의자에서 거의 누워서 볼 수 있는 프리미엄 상영관이다. 근데 여기서도 계획이 삐걱거렸다. 우선 상영관이 너~무 추웠다. 뭔지 모를 촉으로 상영관 앞에 있던 소파 시트(?) 같은 것을 미리 갖고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화장실 때문이 아니라 추워서 중간에 나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뻔했다. 게다가 '씨네 앤 포레' 상영관 특유의 1인 소파형 객석에서 영화를 보자 은근한 졸음이 쏟아졌다. 가까스로 졸지는 않았지만, 앞에 일정들이 딜레이 되어 점심을 못 먹고 12시 상영을 보다 보니 점점 배가 고파왔다. 추위와 졸음과 허기와 싸우면서 봐서 그런지 탑건은 평단과 관객의 찬사를 받은 것에 비해 내 기대만 못한 작품이었다. 물론 압도적인 비주얼과 사운드를 즐기는 영화니 더 큰 상영관에서 몰입해서 봤다면 다를 수 있지만 오늘의 감상평으론 적어도 역대급 명작으로 꼽힐 작품은 아니었다.
첫째가 하원할 때쯤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하늘을 보니 많이 쏟아질 비는 아니었지만 문제는 오늘 5시에 키즈 체육놀이시설 체험수업을 예약해놨던 것이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이니 자전거 뒤에 아이를 태우고 (유아용 안장을 설치해두었고 아이는 거기에 타고 다니는 걸 좋아한다) 가려고 했었지만 비가 오니 차를 타고 가야 했다.
문제는 첫째 아이는 나처럼 자신만의 계획이 머릿속에 있어서 그게 깨지면 스트레스를 받는 편이다. 하원 후에 놀이터에서 놀 것을 머릿속에 그리던 것과 달리 비가 오고 아빠가 이상한 낯선 곳에 데리고 가니까 그게 마음에 들 리 없었다. 결국 아이는 체육놀이시설에서는 아예 참여하고 싶어 하지 않았고 우리는 수업을 바깥에서 지켜보다가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엘리베이터에서 쉬까지 지린 것은 오늘의 화룡점정이었다.
영화 <기생충>에는 아주 유명한 이런 대사가 있다.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은 무계획이야 무계획. 계획을 하면 반드시 그대로 안되거든 인생이."
하지만 절대 실패하지 않는 계획은 무계획이 아니다. 실패에서 배우고 계획을 상황에 맞춰 수정하는 것이다.
난 수영을 대기 걸어놓은 동안 턱걸이와 달리기를 하기로 했다. 수영은 여름만 지나면 대기 순번 3번에도 기회가 올 것이다. '씨네 앤 포레' 관은 앞으로 가지 말아야겠다. 아이가 싫어했던 놀이체육시설은 솔직히 말하면 나도 별로였다. 대신 저녁에는 태권도 영상을 보여주자 아이가 큰 관심을 보였다. 이미 강수확률이 100%라고 뜨는 수요일에 어린이 태권도 도장 체험수업을 신청해놨다. 어쨌든 목표는 첫째가 운동과 신체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는 것이다. 내일은 첫째를 등원시키고 키즈 수영장 두 군데를 돌아볼 예정이다.
"아들아, 아빠는 다 계획이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