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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15. 2022

다시, 갈 지도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21일째

7월 14일(목) 비교적 선선한 여름 날씨였다고 함


지난주, 조리원에 들어온 첫날밤. 티비를 보는데 젊은 여성들이 발리를 여행하는 장면이 나왔다. 발리의 온천, 발리의 풀빌라 수영장, 발리의 레스토랑, 발리의 바다, 발리의 강... 연예인이 아니라 유튜브 여행가들이라 그런지, 진짜 내 친구들의 여행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방안에 누워서 여행하는 기분이 이런 거구나. 여행도 대리만족이 가능했다.


특히 발리라는 나라 자체가 아주 그냥 환상적이었다. 얼마나 재밌게 이 프로를 봤는지 channel S에서 하는 <다시 갈지도>라는 프로그램이고 목요일 저녁 9시 20분부터 한다는 것도 검색해서 찾아냈다. (channel S라는 채널이 있는지도 처음 알았다) 예고편에서 다음 주엔 '라오스'를 한다길래 꼭 봐야지 하고 기억해두었다가 오늘 조리원 방 안에서 미리 틀어놓고 있었다. (수유 콜이 와서 도중에 꺼야만 했지만)


결혼 전이 떠올랐다. 친구들과 싱가포르, 홍콩을 갔었고 그보다 더 전엔 혼자서 유럽, 라오스를 여행하던 나였다. 특히 라오스는 내가 스물아홉 살인 해, 혼자 6박 7일로 배낭 하나 짊어지고 다녀왔던 나라다. 내 인생 통틀어 정말 특별했던 여행이었다. 그땐 겁도 없었지, 혼자서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 친해지고 현지인과도 쉽게 가까워졌다. 낯선 곳에서 밤에 잘도 돌아다녔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아찔했던 기억들인데, 대체 그땐 무슨 깡이었는지 모르겠다)


발리는 남편과도 나중에 아이들과 같이 가자고 콕 찍어둔 나라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 속 두 아가씨의 여행이 너무 신나고 예뻐 보여서인지, 실제로 간다면 동성친구나 엄마와 함께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까르르 까르르 즐기며 아이들 없이 자유로운 수족으로 여행하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예전처럼 혼자서 하는 여행은 도저히 자신이 없다. 예전과 비교해 나는 1. 겁이 많아졌다. 2. 혼자보다 둘이 좋다.


결혼 후에 나는 겁이 많아졌다. 그 결과 self 운전, self 여행이 어려워졌다. 특히 아이가 태어난 뒤 전반적으로 매사 몸을 사리게 됐다. 뭐든지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내 일상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하게 된다. 삶의 가치관이 안전지향적으로 바뀌었다. 커리어도 재테크도 안전 지향형이다.


그리고 혼자보다 둘이 좋아졌다. 뭘 먹든, 보든 같이 교감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하다못해 사진이라도 서로서로 찍어주는 '동무'가 필요하다. (그래서 여기 조리원에서도 그렇게 사람들과 수다를 떨게 되나 보다) 어렸을 땐 마트나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누는 엄마가 이상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그러고 있다. 놀이터에서 모르는 또래 아이들의 엄마들하고도 쉽게 말을 트고, 마트나 엘리베이터에서도 모르는 사람들과 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이렇게 내가 변하게 된 전환점엔 '출산'과 '육아'가 있었던 것 같다. 매 순간 선택할 수 있는 갈림길이 있다면 보다 우리 가족에게 안전한 쪽으로 답을 내리게 된다. 혼자인 게 싫어진 건 답답한 게 싫어서도 있지만, 하나보다 둘일 때 더 명쾌한 해답과 현명한 대안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육아를 하다 보면 알 수 없는 벽처럼 답답할 때가 많다. 게임을 하는데, 이 게임의 마지막 스테이지가 언제인지, 어떻게 이번 판을 깨부수어야 하는지 모르겠고 막막하다. 그럴 때 아무나 붙잡고 이야기를 나눈다. 그 대상은 동네 엄마가 될 수도 있고, 내 친정엄마나 친구가 되기도 하고, 조리원 동기가 될 수도 있으며 하다못해 다 안될 땐 익명성이 보장되는 맘 카페 커뮤니티가 되기도 한다.


물론 여행은 육아와 다르다. 여행은 순간을 즐기는 거다. 명쾌한 해답 같은 것은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혼자만의 휴식이 필요하다면 집에서 쉬면 된다. (집에서 보내는 혼자만의 시간도 늘 그립다)


나는 발리에 가고 싶다. 두런두런 수다도 떨고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겁 많은 내가 의지할 수도 있는 그런 친구와 함께 가고 싶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남편과 가는 게 가장 재밌을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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