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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14. 2022

끼리끼리는 과학이다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21일째

7월 14일 목요일 맑음


오랜만에 맑고 더운 여름날이었다. 오늘은 친구와 점심 약속이 잡혀 있었다. 6월 23일까지 회사를 나가고 휴직이 시작된 이래로 처음으로 잡은 개인적인 약속이었다. 그간 가족끼리 여행을 가거나 육아와 출산에 관련된 일을 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던 터라 오랜만에 잡힌 사적인 스케줄에 아침부터 기대감이 부풀었다.


참고로 나는 만나지 않을 때도 카톡방에서 연락이 끊어지지 않고 지내는 모임이 3개 정도가 있다. 고등학교 친구 모임, 대학교 친구 모임, 전 직장 동료 모임이다. 나를 포함하여 고등학교 친구 멤버가 8명, 대학교 친구 멤버는 7명, 전 직장 동료 모임은 5명이다. 오늘 만난 친구는 그중에 고등학교 친구 모임 멤버였다.


그런데 정말 끼리끼리는 과학이라고 했던가. 매일 결혼과 출산율이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고, 젠더 갈등과 저출산이 국가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이 내 주변에서는 딴 세상 이야기인 것 같다. 고등학교 친구 8명 중에 7명이 결혼했고 태아를 포함하면 현재 시점에서 아기가 11명이다. 9연속 아들만 낳다가 우리 둘째가 딸이 되면서 징크스가 깨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대학교 모임 7명은 전원이 결혼했고 아기가 8명이다. 전 직장 동료 멤버도 5명 중에 4명이 결혼했다. 그나마 이 그룹에서는 아직 아기는 우리 집 애들 뿐이다.


어쨌든 세 모임에서 (중복되는 나를 한 번만 계산하면) 18명 중에 16명이 결혼했고 17명의 아기가 있다. 심지어 이렇게 모임으로 만나지 않고 1대1로 개별적으로 절친인 지인들도 다 결혼했다. 대체 그렇게 늘어난다는 비혼주의자들과 딩크족들은 어디에 있다는 것일까?


오늘 만난 친구는 3살 아들과 두 달 된 아들이 있는 녀석이었다. 오랜만에 만난 짧은 1시간 동안 우리는 거의 육아 얘기만 했다. 회사 얘기를 해도 결론은 육아 얘기, 친구들 얘기를 해도 결론은 육아 얘기가 됐다. 비단 우리뿐 아니라 아빠가 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당연해진 세상이다. 하지만 앞서 말한 세 모임 전체 중에서도 육아휴직까지 하는 유일한 아빠인 나는 그런 사람들과 끼리끼리에 포함될 수밖에 없는 운명일지도?


오후에 첫째 아이 하원을 시키고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노는 모습을 보면서 그 해답을 조금은 찾을 수 있었다. 실은 우리 아이는 변신 로봇이나 자동차 장난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헬로카봇이니 하는 만화가 별로 교육에 도움도 안 되고 시간낭비 같아서 안 보여주고 싶은 마음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안 보여준다고 노출이 안 되는 세상이 아니다. 애니메이션이나 완구를 만드는 회사들은 아이들을 매혹시키는 방법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 아이는 그런 것에 그닥 관심이 없었다. 놀이터에 다른 친구가 변신 로봇을 들고 나오면 우리 아이는 그걸 사달라 하는 게 아니라 나한테 집에 있는 넘버블록 장난감을 가지고 오라고 한다.


보통 놀이터에서 첫째의 친구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변신로봇을 좋아하는 아이와 자연 친화적으로 노는 아이. 아이는 오늘도 개미와 매미를 쫓아다니는 친구들과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로봇을 가지고 나온 다른 아이는 원래 로봇을 가지고 노는 친구들이 오늘따라 다 없었던 탓에 쓸쓸히 집으로 일찍 돌아갔다. 글쎄, 그 아이에게 너도 흙장난과 개미집 찾기와 매미 잡기를 같이 하라고 하면 했을까?


결국 그냥 5살 때부터도 끼리끼리는 과학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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