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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16. 2022

일종의 곱빼기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22일째

7월 15일(금) 기분 좋게 더운 날씨


오늘은 산부인과 진료가 있는 날이다. 출산 후 처음으로 담당 선생님을 만났다. 회음부와 자궁 초음파 검진을 했다. 모두 다 잘 아물고 있다고 한다. 내가 체감하기에도 첫째 때보다 몸의 회복 속도가 빠른 것 같다. 수유와 유축은 비슷한 크기로 힘들지만, 그 외의 것들에선 내 몸이 참 기특하다. 기특하게도 내 몸이 나를 위해 빠르게 반응하고, 원래대로 되돌아간다. (몸무게 빼고. 몸무게는 하루에 0.2kg 정도씩 줄어드는 듯하다)


산부인과 진료를 받는데 어떤 남자의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병원 직원의 대응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소리소리를 질러댔다. 자초 지총도 듣다 보니 자연스레 알게 됐지만, (부인이 출산을 했는데, 코로나 검사와 병원 출입에 대한 문제로 실랑이가 있었던 것 같다)


그 사람이 어떤 억울한 일을 당했는지는 알고 싶지 않았다. 그냥 그 사람의 태도에서 그 사람의 품격이 느껴졌다. 부당한 대응에 자기감정을 저런 식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구나. 저 사람은 어렸을 때 분명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의 감정을 어떻게 상대방에게 표현하고, 전달하는 건지 배우지 못했을 거다.


그 남자는 세네 살쯤 되는 어린 여자아이를 안고 있었다. (심지어 경찰까지 와서 병원 밖에서 경찰들에게 자초 지총을 설명하는 중이었다) 나는 그 아이도 염려됐다. 저 아이 역시 부모로부터 뭘 배울 수 있을까? 억울하면 화내고 소리 지르는 것?


병원 진료를 마치고 남편과 밥을 먹으며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과 나는 MBTI가 정반대다. 남편은 ENTJ고 나는 ISFP다. 정확히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우리는 참 많이도 투닥투닥 싸웠다. 사소한 것에 대한 의견 차이, 삶에 대한 가치관 차이는 말할 것도 없고 서로의 예민한 감정이 건드려질 때마다 날카롭게 꼬집고 할퀴는 말들도 서슴없이 했다. (다행히도 우리 부부는 취향만큼은 참 닮아서, 아무리 투닥거려도 같은 취향의 취미를 함께 즐기기 위해 쉽게 화해한다)


우리가 세상 모든 사람에게 그런 건 아닌데, 유독 서로에게는 좀 더 엄격한 잣대로 공격을 해댔던 것 같다. 그때의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상대방에게 표현하고 전달하는지, 서툴렀다.


그리고 결혼의 연차가 쌓이며 우리는 서로의 예민한 구석과 민감한 부분을 알아가고 있다. 사실 이미 머리로는 알았던 부분이다. 머리로 아는걸 말로 마음으로 조심하는 용기를 얻어가고 있다. 특히 둘째 출산 전후로 나는 우리 관계가 조금 더 성숙해진다고 생각한다. 남편이 어느 날 '애들도 챙기고' 이런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에게는 '애들이' 있다. 난 그날 이후로 조금 더 나의 행동과 말을 조심하게 됐다. 엄연히 5살, 1살 남매의 엄마로 아이들 앞에서 기본적인 소양을 갖춘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경각심이 생겼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내가 교육시켜야 할 대상이 생기는 것이다. 엄마, 아빠가 우주고 세상의 전부인 5살 남자아이와 1살 여자아이의 부모가 된 것이다. 누군가를 교육시키기 위해 먼저 실천하는 것만큼 좋은 것은 없다. 나의 자아정체성이 보통 자장면에서 곱빼기 자장면이 된 것과도 같다. 평소의 내가 그냥 자장이었다면 이제부터 나는 곱빼기 자장이다. 그만큼의 품격이 내 그릇에 담기도록 노력해야 한다. 가장 가까운 내 가족들에게, 주변인들에게, 매일 마주치는 이 세상에 정성스럽게 대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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