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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16. 2022

아이는 아기가 아니다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22일째

7월 15일 금요일 시원하게 더움


오늘은 아내의 산부인과 검진이 있는 날이었다. 첫째를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나도 서둘러 외출 준비를 했다. 픽업하러 가서 일주일 만에 본 아내는 조리원에 갇혀있다가 오랜만에 외출이라 살짝 들뜬 모습이었다. 곧 산부인과로 향했다. 많은 사람들이 출산 이후에는 아기 위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산부인과만큼은 산모가 가장 중심이다. 담당 선생님은 아내가 출산한 지 일주일 된 사람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며 기뻐했다. 우리는 자연분만을 권유하고 둘째 아이를 잘 낳게 해 준 은혜에 감사를 표했다.


병원 검진 이후에도 중요한 스케줄이 계획되어 있었다. 바로 둘째 아이 증권사 계좌 개설이다. 나는 원래 금융 관련한 일을 하고 있고 개인적인 투자 성향도 굉장히 적극적인 편이다. 첫째 아이는 이미 2년 전에 증권사 계좌를 만들어서 매달 10만 원씩 적립식으로 투자를 하고 있었다. 실은 처음에 태어났을 때는 전혀 이런 생각도 못하다가 우대금리를 주는 어린이 적금을 한번 들어서 만기를 채웠고 그 이후에 증권 계좌를 만들어주었다. 오빠는 3살 때 만들어준 것을 동생은 태어난 지 10일 만에 만든 셈이다.


사실 성공적인 투자에 대해 전문가들이 입을 모으는 불변의 진리는 '장기투자'일 것이다. 하지만 돈 쓸 일이 자꾸 생기고 증시가 오르내리는 것을 매일 지켜보는 어른 입장에서 샀다 팔았다를 하지 않는 것은 굉장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이 계좌는 다르다. 어차피 용돈 준다 생각하고 매달 10만 원씩 넣다 보면 오르고 떨어지는 것에도 둔감해진다. 하지만 태어나자마자 매월 10만 원씩 투자한다면 1년에 120만 원, 10년에는 1200만 원, 성인이 되는 20살에는 2400만 원을 손에 쥘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원금 기준이다. 어디에 투자하느냐에 따라 수익률은 다르겠지만 참고로 20년 전인 2002년 대비 삼성전자 현재 주가는 7~8배 수준이다.


간혹 내가 육아에 꽤 진심인 아빠인 것을 본 지인들이 이런 것을 묻곤 한다.

"원래부터 아기 좋아하셨어요?"


내 대답은 전혀 아니오다. 나는 원래 아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지금도 내 아이들은 정말 세상 끔찍이 예뻐하고 사랑하지만 남의 애들은 그저 그렇고, 지인들에게도 아기가 귀여우니까 아이를 낳으라고 권하지는 않는다. 아기는 1살 때도 귀엽고 10살 때도 귀여운 강아지나 반려동물과는 다르다. 아이는 계속 아기가 아니다. 아기인 시절은 금방 지나간다. 그리고 순식간에 초등학생이 되고 사춘기를 거쳐 어느새 성인이 될 것이다.


육아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추앙하게 되는 오은영 박사님이 늘 강조하는 것이 "육아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이의 독립"이라는 거다. 나도 100% 동의하는 말이다. 내 아이들은 아기, 어린이 혹은 청소년으로 나와 지내는 시간보다 어른이 된 이후 나랑 같이 늙어갈 시간이 훨씬 길다.


MBTI에서 N의 성향이 강한 나는 증권사 계좌를 만들면서 이런 상상을 한다.

"자 이제 20살이 되었으니 니 이름으로 만들었던 증권사 계좌 비밀번호를 알려줄게. 여기에 엄마 아빠가 매달 10만 원씩 넣어서 투자를 했고 지금은 1억이 들어있단다(행복 회로). 이걸로 대학교 등록금을 내건 자취방을 구하건 창업을 하건 마음대로 하렴. 하지만 더 이상 줄 건 없다^^"


물론 이게 현실이 되려면 아마도 20년간 경제관념 교육을 철저히 잘해야 될 것 같다. 20년간 모아준 돈을 1년 만에 탕진하고 돌아온 탕아가 되는 꼴을 보고 싶진 않으니까 말이다.


오후에 첫째 유치원 하원을 하고 평소처럼 놀이터에서 시간을 보냈다. 4시 반에는 너무 더워서 그늘에서 간식을 먹던 아이들은 놀이터에 그늘이 지는 5시부터 정말 신나게 놀아댔다. 어제 썼던 일기가 무색하게 끼리끼리도 아니고 모두 다 같이. 우리 애가 오늘따라 애들한테 인기가 좋아서 더 기분이 좋았다. 애들은 별 것도 아닌 놀이를 자기들끼리만 알아듣는 규칙을 만들어가며 참 열심히도 한다. 흐뭇하게 아빠미소를 지으며 사진까지 찍어대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나 아이들 좋아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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