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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17. 2022

호우시절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23일째

7월 16일(토) 소나기가 왔다던데


오늘은 정말 무료한 하루였다. 어제 산부인과 검진으로 외출을 해서 그런지 유독 조리원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늘상 보던 tv도 유튜브나 sns도 재미없었다. 책도 읽기 싫었고, 왠지 알 수 없게 무기력함을 느꼈다.


오늘부턴 마사지도 없다. 어제부로 마사지는 끝이 났다. 마사지를 안 해서 그런 것인가. 몸이 더 축축 처졌다. 오늘은 유축도 딱 1번 했다. 아침엔 모자동실 시간 직수를 했고 오후엔 3시까지 버티다 유축을 했다. 저녁 모자동실 시간에도 직수를 하고, 지금 유축할 타이밍이지만 직수를 위해 참고 있다. 가끔가다 흐르는 모유는 손수건이나 수유패드에 짜서 버리고 있다.


어쨌든 프리한 생활이다. 몸도 머리도 마음도 아주 프리하다. 프리하게 조리원 복도를 걸어 다니는데 몇몇 병실에서 남편들이 나와 깜놀했다. 아하, 오늘 주말이지. 어쩐지 어젯밤부터 남편들이 한두 명 보이더라니. 코로나 이후 조리원에 남편이 함께 있는 경우가 많이 줄었지만 초산모의 경우 드문드문 남편들이 같이 지내는 듯하다. (보통 투숙 전 코로나 검사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 잘 검사하고 있겠지?)


경산모들은 남편이 같이 있을 수 없다. 집에 있는 다른 아이들을 돌봐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엔 특히 초산모가 여럿 들어와서 유축한 젖병을 신생아실에 가져다주거나 모자동실 시간 전후 아이를 데려가는 남편들이 두어 명 보인다. 뭔가 풋풋하고 보기가 좋았다.


초산인 만큼 보다 신혼일 테고, 첫 아이를 품에 안고 설레어하는 두 부부의 모습, 아내와 아기 옆에서 서투르게 쩔쩔매는 남편들의 서투른 모습도 보기 좋았다.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첫째 땐 모자동실이 저녁시간에만 있었다. 저녁 7시였던 것 같다. 그땐 남편이 출산휴가를 짧게 쓴 뒤, 바로 출근을 했기에 난 남편이 모자동실 시간 전에 퇴근하기만을 늘 기다렸다. 남편 없이 아기와 단둘 이만 있는 게 무서웠다.


지금의 난 달라졌다. 모자동실 시간 외에도 아이를 수시로 체크하고, 신생아실 선생님들이 아무리 숙련된 전문가라 할지라도 엄마인 나보단 아이를 더 세심히 챙기진 못할 거란 확신도 있다.


그렇지만 왠지 오늘은 남편이 옆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하루 종일 무료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상대적 박탈감 때문인 것 같았다. 나도 남편이 같이 있으면 좋겠다. 옆에서 수발도 들어주고 말동무도 해주고, 둘째와 같은 속도로 친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붙어있음 또 첫째 걱정에 집에 얼른 갔으면 싶을게 뻔한대도)


우리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지. 신생아 돌보느라 어쩔 줄 모르고 힘들고 고생스러웠어도 참 좋은 시절이었지. 인생에 한번뿐일 푸릇푸릇한 신혼. 어찌 보면 그땐 바로 우리들의 '호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 '호시절'이 이번 휴직기간 중 다시 오면 좋겠다. '좋은 비는 적당한 때에 내리네.' 영화 <호우시절>의 제목처럼, 우리에게 좋은 비가 다시 내려 제2의 신혼, 두 번째 호시절을 보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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