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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17. 2022

그렇게 아버지를 넘어선다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23일째

7월 16일 토요일 소나기


큰 외삼촌 칠순 기념 가족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6남매 중에 넷째인데 나만 외동이고 나머지 5명의 삼촌과 이모들은 모두 결혼했고 자녀도 둘씩이다. 즉 나한테는 이종사촌이 10명이나 있다. 여기에다 그 사촌들도 대부분 결혼했고 이종사촌 조카들도 10명 정도 있으니 무슨 칠순잔치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족 식사만으로도 수십 명이 모이는 대규모 모임이 됐다.


사실 코로나가 터지면서부터 이런 모임이 없어져 굉장히 오랜만에 갖는 자리였고 최대한 많은 인원이 참석하자고 다들 독려하여 나도 참석하기로 했다. 조리원에 있는 아내와 둘째는 어차피 갈 수 없으니 나 혼자 첫째만 데리고 부모님과 같이 가는 것이다. 대신 경기도기는 해도 꽤 먼 거리를 내려가야 했기에 내가 혼자 뒷좌석에 아이만 태우고 오래 운전해서 가기엔 부담이 됐고, 부모님이 어제 우리 집에 와서 주무시고 내 차로 다녀왔다.


실은 대체로 아들과 아버지는 좀 독특한 관계다. 아들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최초의 경쟁상대이자 언젠가는 넘어야 할 대상이다. 하지만 쉽지 않다. 어린 시절 보아온 슈퍼맨같이 뭐든지 잘하고 힘도 센 것 같은 아버지는 아들에게 세상을 가르쳐주고 때론 혼냈던 존재이기에 성인이 되어도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나 역시 그랬다. 키는 이미 고등학교 때쯤 아버지보다 커졌고, 사회적 경제적으로도 몇 년 전 아버지가 정년퇴직한 이후로는 내가 더 객관적으로 우위에 있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아버지를 넘어섰다는 확신은 별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오늘 하루는 그걸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우선 오늘 일정의 모든 결정권은 나한테 있었다. 아침에 출발 시간을 정하는 것부터 그랬고, 집에 돌아오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식사를 하고 나온 시간은 대충 2시쯤이었는데 가족들은 큰외삼촌 댁에 가서 과일이나 후식을 먹고 놀다가 가기로 되어있었다. 사실 원래 아버지는 외가 모임에서 아웃사이더다. 어머니에게는 친정이고 나에게는 외가지만 아버지에겐 피 한 방울 안 섞인 사람들만 잔뜩 있는 처가다. 공무원이자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아버지와 달리 외가 어른들은 모두 사업가에다 종교도 없다. 여러모로 굳이 오래 있고 싶지 않을 만하다.


허나 나는 어려서부터 그게 싫었다. 외가 모임에 가서 나도 사촌들과 더 친하게 지내고 싶고, 오래 늦게까지 있고 싶은 날이 많았지만 아버지가 집에 가자고 하는 시간이 곧 우리 출발시간이 되었다. 오늘도 역시 아버지는 식당에서 나와서 큰 외삼촌댁에 가지 않고 먼저 올라가고 싶은 눈치였다. 하지만 오늘의 결정권자는 나다. 이렇게 오랜만에 모인 건데 왜 또 우리만 먼저 가냐며 4시까지만 있자고 제일 먼저 큰 외삼촌댁으로 향했다.


대가족이 모여서 이것저것 먹고 아이들 노는 걸 쫓아다니니 4시는 금방 다가왔다. 누군가 나에게 말했다.

"4시에 가지 말고 우리 다 같이 30분 더 있다가 4시 반에 일어나자"

"네~ 그런데 저한테 허락을 받으실 필요는 없는데 ^^;"

"네가 너희 가족 운전수잖아 운전하는 사람이 정하는 거지"

그랬다. 이제 우리 부모님은 내가 가고 싶어 져야 출발할 수 있었다.


수많은 친척들 사이에서 열심히 놀았던 첫째는 집에 돌아오는 길에 차에서 꿀잠을 잤다. 그 틈에 왠지 둘째 아이가 첫째한테 지지 않고 만만치 않은 녀석일 것 같다는 얘기를 나눴다. 아버지는 여동생은 원래 부모님이 좀 봐주고 더 편들어주니까 그거 믿는 구석이 있다고 하면서 애들을 공평하게 대해야 한다는 조언을 했다. 


"아빠는 딸 안 키워봤잖아요. 애도 한 명밖에 안 키워봤잖아요. ㅋㅋ"

둘째, 딸내미. 아버지는 못 가본 미지의 영역. 아버지를 넘어섰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 역시 부모의 마음으로 우리 아들이 나보다 큰 사람이 되길 바란다. 하지만 나를 너무 빨리 쉽게 넘어서지는 못하도록 더 만만치 않은 경쟁상대가 되어주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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