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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25. 2022

우리들의 불침번 일지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31일째

7월 24일 일요일 날씨는 잘 모름


이것은 어젯밤 이야기인가 오늘 일기인가 모를 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이 일기는 해방일지가 아니라 불침번일지가 되어가고 있다. 둘째의 낮과 밤이 바뀐 탓이다. 어제 다행히 첫째가 중대 결심(?)을 하고 할머니 집으로 가서 자지 않았더라면 오늘 낮은 더 끔찍해질 뻔했다. 아니 사실 우리가 끔찍해질 것은 없었을 수도 있다. 단지 피곤해서 계속 낮에도 병든 닭처럼 틈만 나면 조는 엄마 아빠 사이에서 첫째만 심심한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의 할머니 집 행은 정말 그 아이 입장에서는 선견지명이자 신의 한 수였다.


둘째가 조리원에서 집으로 온 것이 이제 5일째인데, 사실 처음에도 생각보다 쉽지 않긴 했지만 오늘 새벽은 남달랐다. 그날이 마라 맛이라면 오늘은 불닭볶음면 정도는 되었던 것 같다. 얘는 낮에는 그냥 천사다. 기본적인 욕구인 먹고 자고 싸고만 반복한다. 그 사이 깨어있는 시간에는 엄마 아빠한테 이쁜 표정도 짓고 세상 구경도 하고 초점책도 보면서 시간을 보낸다. 그러다가 틈만 나면 픽 쓰러져 잔다.


근데 밤에는 정 반대다. 낮에 안 울었던 만큼 밤에 더 울고 응가도 두배로 하고 잠도 안 잔다. 먹고 나서는 온 몸으로 용을 쓰고 낮에는 아기양 같던 울음소리도 밤에는 우렁찬 샤우팅으로 변모한다. 만약 이게 처음이라면 크게 당황하거나, 우리 아기는 밤에 잠을 안 자는 이상한 애라고 푸념했겠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아마 이건 영아산통일 것이다. 영아산통은 생후 2~3개월까지 신생아한테 나타나는 것인데 주로 밤이나 새벽에 배가 아파서 울고 보챈다. 이것도 얼마 지나면 없어질 거라는 것을 알기에 좀 더 힘을 낼 수 있다. 시간이 약이다.


어쨌든 우리는 할 수 있는 기본을 할 수밖에 없다. 새벽에 덜 깨고 잘 자게 하는 특별한 방법은 딱히 없다. 충분히 잘 먹이고 트림시키고 기저귀는 최대한 빨리 갈고 소화 잘 되라고 배 문질러주고 그런 게 다다. 효율적으로 둘이 교대로 나눠서 하기로 했다. 말 그대로 불침번 근무다. 물론 이것도 우리가 육아가 처음이거나 회사를 다니는 중이라면 예민한 문제였을 수 있다. 누가 잘못해서 애가 깼느니,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냐느니 이런 것들이다. 애한테 짜증도 냈을 거다. 우린 그런 건 없다. 그냥 한 번씩 번갈아가면서 하기로 했다.


그리고 수유와 잠 등을 기록하는 '베이비타임' 어플로 며칠간의 누적된 패턴을 보니 확실히 낮과 밤이 바뀌어 있었다. 그래서 해결책은 낮에 더 많이 놀아주기가 됐다. 단번에 바뀌지는 않지만 오늘 낮에 최선을 다한 덕분에 어제보다는 밤잠 모드로 들어간 시간이 확실히 당겨진 느낌이다.


한편 어제 할머니 댁에 갔던 첫째는 오후까지만 해도 하루 더 자고 오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지만 결국 저녁에 나를 소환했다. 역시 아직 엄마 아빠 없이 두 밤은 무리다. 그래도 이틀간 지루할 틈 없이 놀았는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집에 빨리 가자더니 차에 탄지 10분도 안되어 숙면모드에 들어갔다.


집에 도착해서 잠든 첫째 아이를 안고 올라가려고 안아 들었다. 저녁까지만 해도 3.5kg짜리 아가를 한 손으로도 안고 놀다가 갑자기 17kg 넘는 애를 들쳐 안으려니 마치 거인 같았다. 그래도 아빠가 들고 와서 신발 벗기고 마스크 벗기고 방에 눕히는 동안에도 일어나지 않는다. 누가 업어가도 모를 것이다. 한 명이 잠을 안 자서 엄마 아빠가 불침번을 서는데 그나마 다른 한 명은 이래서 다행이다.


첫째가 신생아 땐 더 심했던 것을 떠올리며 조금만 지나면 이렇게 될 거라고 믿기로 했다. 둘째야 너는 오빠한테 정말 고마워해야 한다. 오빠가 엄마 아빠 마음에 상대적 너그러움을 싹트게 해 줬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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